'검사(檢事)'의 '檢'자는 교정할 검, 단속할 검, 바로잡을 검이고 '검사'란 '검사(檢査)하는 일'이니까 '事'자를 '士'자로 바꿔야 '검사하는 검사(사람)'가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글자 뜻이야 별 거 아니고 별로 '무서운 사람' 같지도 않다.

어쨌거나 '검사' 하면 소설 등 작품 속의 두 타이프가 얼핏 떠오른다.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대표 희곡 '검찰관(Revizor)'의 그 검사와 김춘광(金春光) 원작 소설의 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그 주인공 검사다.

1836년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서 초연된 '검찰관'은 도박에 여비를 몽땅 날린 건달 청년이 중앙에서 암행 나온 검사로 우연히 오인 받자 내친 김에 지방 탐관오리를 실컷 골려주고 자취를 감춘다는 줄거리다.

한데 그 검사 희화화(戱畵化)가 문제가 돼 결국 고골리는 해외로 도피하고 말았지만 그런 우스개 검사상(像)과는 딴판인 서릿발 같은 논고의 위엄 있는 검사상이 '검사와 여선생'형 검사였다.

한 탈옥수를 숨겨준 일로 남편의 오해를 사 칼부림까지 당했지만 오히려 남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선 아내를 옛 초등학교 시절 극진히 돌봐준 가난한 제자의 도움으로 무죄가 된다는 내용이다.

변호사도 아닌 검사가 어떻게 피고를 그렇게 도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검사다운 검사상은 대쪽과 서릿발이다. 한 쪽 시선은 늘 최고 권부에 가 있고 그쪽의 한 마디, 반 마디에 물먹은 미역처럼 후줄근해진대서야 '검사와 여선생'형 검사는 영 불가망(不可望)이다.

모든 검사가 미국 O J 심슨 사건의 여검사 마샤 클락 같다면야 워터게이트 사건의 콕스와 자워스키, 이탈리아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주역 피에트르, 일본 록히드 사건의 요시나가(吉永祐介) 같은 특별검사가 왜 필요한가.

검사가 검사답기 위해선 이른바 '권력의 시녀(侍女)'용 앞치마부터 벗고 독립해야 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분명하고도 확실한 선을 둘러 그어야 할 것이다. '검사와 여선생'도 아닌 사상 초유의 '검사와 대통령' 토론회가 더 이상 신문 잡지의 희화 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