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고액권인 1만엔짜리 지폐에 얼굴이 실려 있다는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의 명문 게이오(慶應)대학 창설자요, 일본 근대의 최고 계몽사상가로 알려진 그는 우리 나라 근대사에도 깊은 연관을 가진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 발간(1883년)을 주선했고, 갑신정변(甲申政變·1884년)의 막후 연출자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그를 더욱 잊지 못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그의 유명한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다. 그는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끝나자 100일 만에 이 이론을 자신의 신문인 ‘지지신보(時事新報)’에 발표했다.

탈아입구란 한마디로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을 배우자’란 뜻이지만, 그 기저에는 당시의 조선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멸시가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서양의 선진국을 따라 자본주의를 배워 힘을 기르되, 조선이나 중국은 반쯤 야만인 반개국(半開國)이므로 서양 여러 나라 대신 일본이 지배해야 한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배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사상은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했고, 마침내는 조선 식민지배의 밑거름이 된다.

얼마 전 일본 문부과학성이 ‘일본 내 외국인 고등학교 중 아시아계 고교 졸업생들에겐 대학입학 자격을 주지 않기로 한 방침’을 확정했다. 즉 영어를 사용하는 구미(歐美)계 외국인 고교 출신자는 별도의 대입검정시험을 거치지 않고 도쿄대 등 국립대에 응시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인학교 조총련계 조선인학교 중국인학교 등은 대입검정시험을 치러야 하는 차별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아마도 100여년 전 후쿠자와로부터 비롯된 고질병 ‘탈아입구증=아시아 멸시증’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

하기야 툭하면 갖은 망언을 일삼고 심지어 교과서 왜곡까지 떡먹듯이 해온 그들 일본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만, 정작 우리 한국은 어떤 식의 대응을 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다. 들리는 말에 조총련 측은 문부성 항의방문, 기자회견, 공개수업 등을 통해 줄곧 문제삼아오고 있다고 하던데…./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