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자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베이징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新聞週刊' 3월3일자가 당국의 압력으로 가판대와 서점으로부터 모조리 수거됐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서웠다.
이 달로 물러나는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5년간 공적을 다룬 특집에서 '세계 최고 총리의 한 사람, 노벨경제학상에 값한다, 중국의 견고(堅苦)한 정치 풍토에 춘풍을 불어넣다' 등 최고의 찬사가 장쩌민(江澤民) 주석보다도 돋보이는 건 좋지 않다는 게 전부였다.
그런 권력 투쟁 정글인데도 작년 11월 총서기 선출 때 예약한 그대로 국가 주석이라는 옥좌를 단 몇 달간의 컨펌(확인) 절차를 거쳐 차지한 후진타오(胡錦濤)는 과연 누구인가.
'황제 모시기는 호랑이 모시기와 같다(伴君如伴虎)'는 말이 있다. 2인자가 1인자로 올라서기는 호랑이 곁에서 살아남기보다 어렵다는 소리다. 소련 혁명군사회의 의장을 지낸 정치혁명가 트로츠키만 해도 어떤가.
그는 일찍이 레닌의 후계자였지만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오스트리아→미국→터키→프랑스→노르웨이로 망명, 전전하다가 결국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도끼에 찍혀 죽었다. 히틀러의 브레인으로 나치의 광기(狂氣)를 극대화한 괴벨스도 베를린 함락 직전 총통 관저 지하 벙커에서 아내와 여섯 자녀를 사살한 뒤 자살했다. 이기붕도 비슷하게 죽었고 박헌영은 처형됐다.
중국의 2인자들은 어땠는가. 27년간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비롯한 린뱌오(林彪), 류사오치(劉少奇), 펑더화이(彭德懷) 등은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죽음의 길로 내몰렸고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등은 덩샤오핑(鄧小平)에 밀려 화병으로 죽거나 빈털터리가 됐다.
그런데도 덩샤오핑→장쩌민처럼 후진타오 또한 장쩌민으로부터 주석 바통을 정글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이어받은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공적을 늘 장쩌민 등 당 지도자들에게 돌리는 등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추진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오랑캐 호(胡)'자 성씨에다 '전진타오'도 아닌 '후진타오'지만 인상 역시 썩 좋다. 그런 저런 점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오동환(논설위원)
후진타오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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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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