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조선의 농서(農書) ‘금양잡록(衿陽雜錄)’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한다. “호미질 나갈 때에 술단지를 잊지말라.” 예부터 우리 민족이 유난히 ‘술을 즐겼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인용되곤 하는 글이다. 하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부여, 진한, 마한, 고구려의 무천, 영고, 동맹 등 제천행사가 주야음주가무(晝夜飮酒歌舞)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이 분명 술을 좋아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딱히 그런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우리 국민은 퍽이나 술을 즐기는 편이긴 하다. 인구수에 비해 술 소비량이 세계에서 첫째 둘째를 다툰다는 말을 자주 듣는 걸로 봐서도 그렇다. 당연히 외국술 수입량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01년엔 위스키만 해도 자그마치 2억6천만달러어치를 기록했다. 국내 위스키 판매량을 보면, 지난 98년 150만상자(500㎖ 18병 기준), 이듬해인 99년 192만상자, 2000년 268만상자, 2001년 319만상자, 지난해 357만상자까지 불과 4년새 138%나 늘어나는 초고속 성장세를 보였다.
이쯤 되면 위스키업계의 주목받는 고객이 될 만하다 하겠다. 오죽하면 몇 달 전 한 외신은 이런 보도까지 했다. “한국이 세계 위스키업계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심지어 세계 위스키협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한국인은 최고의 스카치에 최고의 가격을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놓치기 아까운 고객에다 통큰 ‘봉’이란 비아냥도 배어 있는 듯 싶어 이래 저래 얼굴이 뜨거워졌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위스키업계 ‘봉’노릇은 사양키로 한 모양이다. 지난 달 위스키 판매량이 총 25만868상자로 작년 동기 25만7천551상자보다 3% 줄었고, 지난 1월 37만8천767상자보다는 34%나 감소했다는 소식이다. 비로소 낯 뜨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모르나 우선은 반갑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봉’신세 면할 날도 실제로 오게될지 모르니까./박건영(논설위원)
'봉'신세 면하려나
입력 2003-03-19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3-19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