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경 페르시아 사산(Sasan)왕조의 샤플리얄왕이 아내로부터 배신당하자 세상의 모든 여성을 증오, 결혼하는 여성마다 첫날밤만 치르고 죽여버린다. 그러자 한 대신의 어질고 착한 딸 세헤라자드가 자진해 왕과 결혼,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은 그 하회(下回)가 궁금해 신부를 죽이지 못하고 1천1밤이나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래서 '천일야화(千一夜話)'라 했고 아랍문학의 고전인 '아라비안나이트'가 그 원작이다. 한데 그 '천일야화'의 주요 무대가 바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다.
바그다드 남쪽 85㎞의 바빌론시(市)를 현지에서는 '바벨(Babel)'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문'이라는 뜻이다. 노아의 홍수 뒤 하늘 끝까지 치쌓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무너진 바벨탑의 바벨,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그 현장이다.
그러니까 그 바벨시가 무너지면 이미 9세기경 티그리스강 연안에 인구 100만의 도시로 성장, 아랍문명의 중추이자 세계 교육의 중심지였던 바그다드의 통로만 막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문'이 닫힌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건 하나님의 노작(勞作)인 에덴동산 자리가 바로 이라크 북쪽 국경지대인 비행금지구역이라는 점이다.
이런 바그다드에 현장감이 없더라도 퍼시 애들론 감독에 마리안느 자게브레히트와 잭 팔란스 주연의 88년 영화 '바그다드 카페'라고 하면 “아, 그 영화”할 것이다. 유황색이 주조(主調)인 화면에다 집도 차도 길도 뚱뚱한 주인공도 모두가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사선(斜線) 촬영 기교, 그리고 '난 한 번도 못가져 본 걸 원해/ 인생에 길이 남는 걸/ 나쁜 건 하나도 없잖아/ 모든 게 마술이거든'…흙바람 소리에 휘감긴 채 암울한 기억의 통로로 파고드는 주제곡 '콜링 유(calling you)'는 어땠는가.
'바그다드(Bagdad)'란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기리는 '위대한 신의 선물'이 91년에 이어 또다시 미국과의 전쟁으로 지옥이 될 판이다. 1874년 일본이 처음 번역한 '아라비안나이트'가 '폭야 이야기(暴夜物語)'였듯이 온통 폭야에 작렬할 바그다드의 비극이 안타깝다. /吳東煥(논설위원)
바그다드
입력 2003-03-20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3-20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