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년 전 TV가 미처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절, 어쩌다 한 집에서 TV수상기를 마련하면 그집 안방은 아예 그 동네 마실방이 되곤 했다. 조그만 상자 속에 집과 산과 강이 보이고, 사람들이 나와 말도 하고 노래도 하고 웃고 운다.
한마디로 요술상자였고, 그것이 하도 신기하고 재미있어 동네 꼬마들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염체불구 모여든다. 마을회관 노인정 등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자연히 이야기꽃이 피고 풋풋한 정이 오갔다.
하지만 그런 시절도 잠시, 곧 이어 TV가 흔해지면서 이집 저집 들어오게 되자 양상은 정반대로 바뀐다. 이웃이 굳이 한 곳에 모일 이유가 없어졌고, 그나마 가족끼리 TV 앞에 모여앉는다 해도 대화가 차츰 뜸해지지 시작했다. 너도 나도 TV속에 푹 빠져들다 보니 가족간 대화자체가 귀찮을 정도로 돼버린 것이다. 이제 더 이상 TV는 이웃과 가족을 정으로 묶어주던 끈끈한 고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한술 더 뜨는 대화단절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가족들은 오랜 외출에서 돌아와도 서로 인사를 나눌 여유조차 없어졌다. 집에 들어서는 즉시 씻지도 않고 컴퓨터 앞으로 직행한다. 제각기 채팅하고 인터넷하고 전자오락 속에 빠져들다 보면 곁에 누가 있는 것조차 성가시다.
가족간 이야기꽃을 피우고 풋풋한 정을 나눈다는 건 그야말로 옛 이야기 속에서나 찾을 일이다. 심지어 컴퓨터와 PC통신 때문에 부부간에 또 부모와 자녀간에 다투지나 않는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이른바 정보화시대 사이버시대의 소산이다. 그나마 TV 전성시절엔 가족끼리 모여앉기라도 했었는데.
하긴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며 이미 핵가족화가 이뤄졌고, 이제 그보다도 한참 앞선 사이버시대다. 어짜피 ‘나홀로 인생’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섭섭해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데도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를 못하다. 그나마 사이버세대에겐 상대할 컴퓨터라도 있는데, 컴퓨터를 모르는 노인세대는 도대체 누굴 상대해야하나 싶어서다./박 건 영〈논설위원〉
사이버시대
입력 2003-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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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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