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의 정복전쟁으로 동·서양의 문명이 만났고, 로마의 영토확장 전쟁은 유럽문명에 정체성을 심어주었다. 중국이 오늘날 중화문화권을 형성한 것도 춘추전국 시대, 시황제의 진나라, 항우와 유방의 격돌 등 끊임없이 이어진 내전을 통해 광대한 대륙의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결과다. 전쟁은 그 자체로는 야만이지만, 인류문명사의 관점에서 보면 문명과 문명 사이의 소통과 융합을 가능케 한 촉매였던 것이다. 야만과 문명은 전쟁의 두 얼굴인 셈이다.
그러나 무기가 첨단화 한 20세기 들어 전쟁은 문명이라는 선한 얼굴을 잃어버렸다. 나치는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고, '홀로코스트'(holocaust·대량학살)는 보스니아 내전·르완다 종족분쟁·캄보디아 내전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극단적인 인간의 광기를 증명하고 있다.
창칼을 들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던 과거의 전쟁이 야만을 수반한 판타지였다면, 현대의 전쟁은 첨단무기로 중무장한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독재자의 권력보호를 위해 대량살상을 동반하는 야만의 결정체일 뿐이다. 분서갱유로 역사적 야만의 상징이 된 진시황도 갱(坑)한 유학자들의 머릿수가 고작 450여명 정도였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사상 첫 스마트 전쟁(smart war)이라고 한다. 첨단 디지털 무기를 동원해 목표만을 정확하게 공격,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을 무력화시키는 21세기형 전쟁이라는 것이다. 개전 초기에 스마트 전쟁은 현실이었다.
위성과 GPS로 유도되는 미사일들이 바그다드 시내를 선택적으로 폭격함으로써 '충격과 공포 작전' 그대로 후세인 정권을 조기에 끝장낼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 전황 보도를 종합하면 미·영 연합군의 진격 속도가 주춤하면서 바그다드 시가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마트 전쟁도 국민을 인간방패로 앞세운 후세인 정권의 골목길 전쟁에는 무력한 모양이다. 이에 부담을 느낀 듯 미국 부시 대통령이 '결정적 무력'(핵폭탄)의 사용을 언급했다. 심리전 차원이겠지만 혹시라도 바그다드에 핵폭탄을 사용하거나 무자비한 융단폭격을 가할 경우 미국은 가뜩이나 명분없는 이번 전쟁을 야만적 홀로코스트로 종결시킨 전범의 위치로 전락할 것이다. /윤인수(논설위원)
첨단전쟁의 야만성
입력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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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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