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웨딩드레스는 신부의 순결을 나타낸다. 여태까지 길러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떨리는 손과 상기된 얼굴로 결혼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는 모습은 늘 청순하고 가히 환상적이다.
이어서 주례선생의 주문에 맞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것'을 서로가 다짐한다. 다분히 의례적이고 의식적인 것이지만 어쨌든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할 부부가 되기를' 맹세하는 절차를 갖는다.
혼인서약을 하고 성혼선언문이 낭독되는 어찌 보면 엄숙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같은 의식(儀式)들이 이제 작금의 결혼식에서와 같이 허례허식(虛禮虛式)이 돼버리고 얼마 후 성혼선언문을 휴지조각 던지듯 결혼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다반사다.
며칠 전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하루 평균 398쌍이 갈라섰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미국에 이어 이혼율이 2위에 올라섰다는 부끄러운 통계다.
그 뿐인가. 20년 이상 같이 살던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이혼'도 전체 이혼의 15.7%(2만3천쌍)를 차지하고 이로 인해 가정해체의 고통을 겪는 20세 미만의 자녀들이 크게 증가함으로써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2008년경에는 미국을 추월, 세계 최고의 '이혼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혼을 '밥먹듯'하는 미국의 가정에 대해 '콩가루 집안'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해왔다. 그러나 우려할 것은 우리의 이혼성향은 이제 일본을 앞질러 동양적에서 서양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70년대 미국처럼 가파른 이혼율의 상승을 보여 '이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예로부터 이성지합(異姓之合)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자란 선남선녀가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 자체부터가 기적이고 가슴 벅찬 일이다.
호기심과 끌림의 시기→낭만적인 연애시절→부부간의 갈등→해결의 순환고리를 겪는 것이 부부생활이다. 부부싸움을 밥먹듯 하면서도 서로 양보하면서 가정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60~70세의 '역전(歷戰)의 용사'들을 신혼부부들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이준구(논설위원)
이혼의 시대
입력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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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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