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친소(親疏) 관계엔 여러 단계가 있다. 그 좋은 쪽의 첫 단계가 '우방(友邦)' 'friendly nation'이다. 사전엔 '서로 긴밀한 교통 관계의 나라'라고 했지만 한 마디로 '친구의 나라'다. 두 번째는 '맹방(盟邦)' 'allied nation'이다.

사전 풀이처럼 '목적을 같이해 친선을 도모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영어 'ally'가 '동맹'이듯이 '맹세를 함께 한 나라' 즉 '동맹국' '의형제의 나라'다. 세 번째는 혈맹방, 혈맹국이다. '혈맹(血盟)'이란 '혈판(血判)을 찍어 굳게 맹약함'이고 혈판이란 손가락을 깨물거나 잘라 그 피로써 손도장을 찍는 것이다. 'sealing with blood' 즉 '피 도장 찍기'의 맹세가 '혈맹(blood pledge)'이고 그렇게 한 나라가 '혈맹국'이다.

나쁜 쪽 관계는 어떤가. 그 첫째가 '소 닭 보듯 하는 나라'라면 두 번째는 사사건건 앙숙의 나라, 세 번째는 중국인이 일컫듯이 '피맺힌 원수(血仇)의 나라' '하늘을 함께 일 수 없는 나라'다. 혈맹국의 정반대가 '혈구국(血仇國)'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우리에게 어느 쪽인가.

그냥 피도장만 찍은 맹세(혈맹)의 차원을 넘어 죽기 살기로 함께 싸워온 혈맹 실천국, 즉 혈연관계의 '형제국'이다. 그들은 6·25 때 무려 20만8천명을 파병, 3만3천629명이나 전사했다. 300명도 3천명도 아닌 3만3천여명이다. 영국도 743명, 터키 역시 721명의 젊음이 이 강산에서 산화했다.

그런데 캐나다, 호주, 프랑스, 그리스, 벨기에, 뉴질랜드에다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는 물론 콜롬비아, 남아연방, 에티오피아까지 16개국이나 파병을 해 숱한 목숨을 바친 사실을 우리 젊은이들은 알고 있는 것인가. 그 엄청난 희생의 도움도 모두 미국이 앞장선 덕택이었다.

파병(派兵)이란 십자군전쟁이나 1·2차 세계대전, 심지어는 스페인 내란 등 패가 갈리는 덤불싸움이 아니더라도 으레 있어왔고 동맹국의 요청 땐 거절할 수 없는 게 맹방의 맹약 이행이고 혈맹국 간의 의리라는 것이다. “국익을 위한 고심 끝의 결단”이었다는 노 대통령의 파병 결단과 국회의 승인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도 그런 때문이다.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