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트레비'는 '삼거리'라는 뜻이다. 분수의 도시 로마에서도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분수라는데 우리 말로 옮기면 '삼거리 분수'가 되니 갑자기 촌스러워진다.

이 '삼거리 분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데는 영화의 공로가 크다. '애천(愛泉)'에서 매기 맥나마라가 동전을 트레비 분수에 던지며 ‘1년만 더 로마에 머물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원하는 장면은 올드 팬들의 뇌리에 선명하다. '로마의 휴일'에서는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트레비 분수를 배경으로 자신의 싱싱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분수는 예나 지금이나 서양의 도시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 BC 3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아시리아 왕국은 건조한 기후에 대처하고 왕궁을 장식하기 위해 분수를 만들었다. 샘(泉)을 신성시했던 그리스인들은 신전과 공공건물, 광장에 극성스러울 정도로 분수를 설치했는데 하나 하나가 신과 님프와 영웅을 상징한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수도의 기능을 제공했다고 한다.

목욕에 광적으로 집착한 로마제국에서도 분수는 장식성과 실용성을 함께 지닌 문화상품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광장과 정원 목욕탕을 가리지 않고 분수를 설치했으니 로마 문화는 '분수대 담론(談論)'에서 꽃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동양적 시각으로 보면 분수는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발상이다. 흘러내려가야 할 물이 거꾸로 치솟다니, 이는 반역과 역성의 불길한 징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국의 정원에는 작은 폭포는 있어도 분수는 없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광장과 가로(街路)중심의 도시 문화가 발달하면서 분수는 자연스러운 조경물로 자리잡게 됐다. 문제는 서양의 분수와 달리 사람들과 격리된 나홀로 분수가 많다는 것인데 이는 분수 문화가 일천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고양시와 시민단체가 '노래하는 분수대' 건립을 놓고 대립하는 모양이다. 시는 상징적 명물을 만들겠다고 하고, 시민단체는 철없는 예산낭비라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니 노래하는 분수대는 완공도 되기 전에 벌써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인가. 아무래도 분수에 정서적 공감이 부족한 우리 문화가 빚어낸 시비(是非)이지 싶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