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한림원(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자 저명한 작가인 장 도르메송, 신 철학의 거두 베르나르 앙리 레비, 소설가 프랑수아 쉬로, 원로 한림원 회원 장 프랑수아 드니오 등은 프랑스의 앙가지망(engagement), 즉 행동하는 '참여 지식인'으로 꼽힌다.
그들이 유고 내전의 현장인 고도(古都) 두브로브니크에 새처럼 내려앉기 위해 '노인 공수부대'를 결성한 것은 91년 10월이었다. 하얀 스카프를 늘어뜨리고 검은 고양이를 어깨에 얹은 조종사의 모습으로 일찍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의 후예로 유럽 중세문화의 보고(寶庫)인 그 도시를 전화(戰火)로부터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 14명의 '하늘 길'은 당국의 만류로 무참히 꺾였고 한 척의 범선으로 '바다(아드리아海) 길'을 택해 현지에 접근했지만 그 또한 유고연방 해군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들 지성인의 염려대로 그 도시의 1천500여 유적은 물론 회교 문화 유적의 보고인 보스니아의 중세풍 도시 사라예보와 모스타르(Mostar)도 처참히 파괴됐다.
동방정교도의 세르비아와 가톨릭 교도의 크로아티아가 회교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공격하면서 내건 구호가 '인종 청소'와 '이교도문화 청소'였던 탓이다. 인종 청소→'이교도 청소'도 모자라 '문화 청소'라니! 인종(종교) 갈등의 폐해가 그보다 더 클 수가 없다. 92년 9월 초 영국의 '더 타임스'가 고발한 유고 내전의 문화 유적 파괴→'문화 학살'이야말로 얼마나 비참했던가.
이번 이라크 전쟁의 문화유적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5천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귀중한 사료이자 인류 문명의 보고인 이라크박물관이 몽땅 털려 무려 17만점의 유물을 약탈당했다는 것은 '참담한 비극' 정도로는 표현 수사가 부족하고 미진하다.
대영박물관에 뺏긴 '함무라비법전'에 노한 함무라비 왕이 그 법전을 새긴 석비(石碑)마저 이번에 도난 당해 더욱 노발대발할 일이고 두상(頭像)을 잃은 아카디아 왕 역시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앉을 일이다. 2차대전의 나치 폭격기들도 파리의 유적을 피했다고 했건만 미국은 이번에 어처구니없는 방관과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오동환(논설위원)
전쟁과 문화참사
입력 200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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