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국가 사이에 설정된 선(線·line)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경선은 물론이고 방위선 등 대부분 넘어서는 안되거나 뚫려서는 안되는 선이다. 그 중 유명한 것이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육군장관 '마지노'를 시켜 10년에 걸쳐 총 연장 750㎞의 방위선을 건설한다.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지하설비와 대전차 방어시설을 갖춘 난공불락의 요새선(要塞線)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마지노선의 벨기에 루트를 간단히 돌파하고 프랑스는 나치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 이후 '마지노선'은 모든 분야에서 끊어지거나 뚫리면 끝장인 최후의 저지선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쓰이고 있다.

한민족만큼 선 때문에 고생이 많았고, 많은 민족도 없을 것이다.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발표한 소위 '애치슨 라인'이 대표적이다. 애치슨 라인 설정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6·25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잠시 멈추자며 그어낸 휴전선으로 인해 민족적 불안과 아픔에 시달린지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휴전선은 군사적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한 마지노선으로 이 선을 둘러싼 긴장의 반복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참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또 휴전선으로 인한 단장(斷腸)의 아픔은 측량할 길이 없으며, 이념 대립으로 소모된 국력과 희생된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최근 북한이 베이징 3자회담에서 미국에 핵보유 사실을 밝히자, 레드라인(Red Line)을 넘었다고 난리다. 레드라인은 한·미·일 3국이 설정한 대북정책 전환의 기준 선으로, 북한이 넘어서는 안되는 금지선이다. 넘기 전에는 포용정책을 펴지만 넘어서면 압박정책을 펴는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레드라인은 플루토늄 재처리 여부였다.

그런데 아예 핵무기 보유를 밝히고 나섰으니 북한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당연히 한반도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튼 다자회담 참여국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금줄인 전선(戰線)을 넘지 말아야 할텐데, 이래저래 우리는 선(線)과 악연인 민족인가 싶어 답답하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