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신형(新型) 폐렴' 중국에선 '비전형(非典型) 폐렴'이라 부르는 사스(SARS)는 즉 '신식 폐렴'이다. 신식이든 구식이든 폐병처럼 숱한 천재와 인재를 괴롭히고 죽음으로 질질 끌어간 병도 드물 것이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펄벅, 이노우에(井上靖), 사뮈엘 베케트, 아쿠타가와(芥川龍之介), 시인 실러, 키츠, 이상(李箱), 피아니스트 및 작곡가 쇼팽, 리스트, 바르토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화가 반 고흐, 우메하라(梅原龍三郞), 종교인 우치무라(內村鑑三), 배우 율 브리너 등의 사인(死因)이 폐렴과 폐암이었다.

최근엔 작곡가 리빙스턴, 전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 샹송의 제왕 질베르 베코 등도 폐병으로 죽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최고의 암 연구가이자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하워드 테민 박사까지 폐암으로 숨졌다.

키 크고 비쩍 마른 50∼60년대 한국인은 폐병부터 의심받았다. 영양실조와 과로가 원인인 후진국 병이 폐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대국 '환경대국'인 요즘의 일본에도 폐병이 흔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4월 한 달 동안 구식 폐렴으로 죽어간 유명인만 해도 1일 도쿄대 명예교수 니키(仁木榮次), 5일 일본무용가 야마무라(山村若律), 7일 성우 야마노우치(山內雅人), 8일 음악평론가 우에나미(上浪渡), 9일 일본무용가 사루와카(猿若淸方)와 전 포르투갈 대사 와다(和田周作), 11일 음악평론가 마쓰모토(松本勝男), 12일 영문학자 가이호(海保眞夫), 16일 작가 시모타(霜多正次), 19일 야마구치대 명예교수 시바나이(柴內大典), 22일 피아니스트 이노우에(井上直幸) 등이다.

한편 신식 폐렴 발생지인 베이징(北京)에서는 인파를 막기 위해 혼인식과 장례식까지 금지령을 내렸으니 구식 폐렴으로 죽은 하늘의 영혼들이 내려다 보더라도 기가 막혀 혀를 찰 일이다. 더욱 한심한 건 식품 등을 한 아름씩 고른 뒤 “나, 병원서 도망나온 사스 환자다! 그래도 돈을 받을래?”식의 '사스 강도'다. 정녕 사스에 뾰족한 수는 없을지라도 여름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니 어서 더위가 몰려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