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담장을 싫어하는 녀석이 있어/담장 아래 얼어붙은 땅을 부풀게 하고/담장 위에 놓인 돌들을 햇빛 속으로 떨어뜨립니다/그리고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듭니다/…/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이 틈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르게/봄철 담장을 손질할 때면 나타납니다/그러면 나는 언덕 너머에 사는 이웃에게 알려/어느날 함께 만나 경계선을 걸으며/우리 사이에 다시 담을 쌓아올립니다/…. 1914년에 발표된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 수리'라는 시다. 전체 45행으로 이루어진 이 장문의 시는 사회공동체 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다.
 
퓰리처상을 4회나 수상한 프로스트는 박애주의자 또는 개방주의자다운 담없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 담은 단절할 것을 요구하면서 내쪽의 모습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내것과 네것에 대한 구별을 뚜렷이 하려는 소유권의 표시다.

사람이나 동물의 침입을 방지하고 외부의 시선차단을 목적으로 도시의 담장들이 거대해지고 있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옆집과는 단절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철제로 높이 쳐진 담장마저도 안심이 되지 않아 담장 위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한다.
 
옛날 싸리나무 울타리나 토담, 돌담 등은 그 용어마저 정겨운 데다 야트막해서 동네사람들은 마을을 오고가다 옆집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면 고개들어 서로 눈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며 정을 나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출 것이 없어 서로 눈을 피하고 모른 척할 이유가 없었던 때다. 얼마 전부터인가 삭막한 도시의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려 도시미관이 바뀌어지고 있다. 미술학도들과 화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콘크리트 벽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를 벽화로 바꿔보자는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최근엔 아예 담장을 없애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려는 '담장 허물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96년 경북대와 대구서구청이 처음으로 담장을 허물고 가로공원을 조성한 이후 관공서마다 이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엊그제 인천에서도 '담장없애기' 범시민운동 토론회가 열렸다. 내친 김에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의 벽도 허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이준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