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다랑어, 고등어 등은 헤엄을 치면서도 깜빡깜빡 졸기 일쑤다. 밤낮없이 떼지어 쏘다니는 바람에 마음놓고 잠잘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꺽다리 기린은 선 채로 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몇 분씩 잠이 들기도 한다.
사람 역시 출퇴근 만원 버스에서도 선 채로 꾸벅거리는 직장인이 흔하고 지하철은 마치 뉴캐슬병에 걸린 수탉처럼 일제히 벌이는 '졸음 경연장' 같기만 하다. 앉은 채로, 선 채로 꾸벅꾸벅 조는 잠을 순수한 우리말로 '말뚝잠'이라 한다. 누가 갖다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정겨운 어감인가.
그런데 꾸벅꾸벅 조는 말뚝잠이 화(禍)를 부르고 저승사자를 초빙하기도 하니 탈이고 비극이다. '아함경(阿含經)'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얘기다. 부처님의 설법 때마다 꾸벅거리는 아니룻다(Aniruddha·阿那律)라는 제자가 어느 날 된통 꾸중을 듣자 다짐하고 맹세했다. “세존이시여, 오늘부터는 몸이 무너지고 녹아 없어지더라도 절대로 졸지 않겠나이다.” 그는 졸음과의 전쟁을 벌였고 새벽까지도 고통을 무릅썼다. 그러다가 그만 안근(眼根)을 잃어 눈이 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육안 대신 심안(心眼)을 얻어 훌륭한 제자가 됐다는 것이다.
심안도 좋지만 목숨을 잃는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도 무섭다. 지난 2월26일 일본 오카야마(岡山)역에 진입하려던 히로시마(廣島)발 도쿄행 신간센(新幹線) 고속열차 '히카리 126호'가 정해진 정차 위치보다 100여m 못 미쳐서 자동열차제어장치(ATC)에 의해 긴급히 멈춰섰다. 역무원이 뛰어올라가 보니 운전사는 신나게 졸고 있었다.
졸음 시간은 약 8분.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만약 시속 270㎞ 고속 열차에 자동제어장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제의 말뚝잠 운전사는 정밀 검진 끝에 '중증수면시무호흡증후군(SAS)'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름 아닌 '졸음병(嗜眠症)'이었다.
서울 지하철공사가 승무원의 졸음 예방을 위해 엊그제 사들인 1년치 껌이 12만9천750통이나 된대서 화제가 되고 있다. 껌을 씹든 뭐를 씹든 졸음운전만은 안된다. 콩나물 시루 지하철의 졸음운전이란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 아닌가./오동환(논설위원)
졸음운전
입력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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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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