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중앙선관위가 역대정당등록현황이라는 자료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정당법이 제정된 1963년 이후 99년까지 81개의 정당이 창당됐고, 한 정당의 평균수명은 3년2개월에 불과하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을 비롯해 표에는 빠졌지만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까지 역대 대통령의 집권당 중 최장수 기록은 신민주공화당의 17년6개월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정당 결사의 자유는 당연하다. 또 국민의 지지를 못받는 정당은 소멸하게 마련이니, 정당의 부침 자체는 체제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자연스럽지 못해 문제다. 대통령이나 소수 정치리더를 위한 '맞춤 정당'들의 명멸이 바로 우리의 정당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유지, 대통령 후보들의 정권쟁취 용도에 맞게 태동했다가 용도 폐기됐으니, 정당이 대의민주주의 기능을 발휘할리 만무다.

대의민주주의 요람국들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한국 정당사는 더욱 누추하다. 영국의 보수당은 170년, 노동당은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당나귀는 211년, 공화당 코끼리는 149년째 장수중이다.

독일의 사민당이 124년을 버티고 있고, 프랑스의 사회당이 97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일본 자민당의 48년 역사는 약관의 연륜에 불과할 정도다. 우리도 대의민주주의를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여년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잘못은 국민에게도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애들 과외비 줄 돈은 있어도, 정당에는 한푼의 당비도 아까워하니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애매해진 것이다. 그러니 짓든 부수든 남의 일일 수밖에. 몇 달째 민주당이 신당 창당을 놓고 시끄럽다.

신당을 창당하자는 사람들이나 지키자는 사람들이나 명분은 개혁과 국민통합인데, 돌아올 수 없는 다리의 양단에서 대치중이니 속셈이 달라서일 게다. 아무튼 신당이 창당되면 그 또한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맞춤 정당이 될테니 장수(長壽)를 장담하기는 힘들지 싶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