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부터 이상하다. '인적(人的)'의 '的'은 명사 밑에 붙어서 '…인' '…임' '…와 같은' 또는 '그런 성질을 띤' '그런 상태를 이룬'의 뜻이라는 게 국어사전 풀이다.
따라서 '人的'이라면 '인간 같은' '인간과 비슷한' '인간의 성질을 띤' '인간을 닮은' 존재를 뜻하고 인간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모자라는 '인간 동물' 같은 어감마저 풍긴다. 그보다는 '교육인간자원부'나 '교육인재부' '교육인재양성부' 또는 '교육사람부(!)'쯤이 어떨까.
어쨌거나 요즘 교육인적자원부 소리만 들리면 교원노조와의 분규와 갈등부터 연상한다. 이제 작년 3월과 11월의 영국 교조처럼 파업까지 일삼고 96년 9월5일 스승의 날을 맞은 1천여 뉴델리 교사들처럼 체불 임금을 요구하며 나체 시위를 벌이는 해괴한 광경이 이 땅에서도 벌어질지 모른다.
학부모를 비롯한 일반 시민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즉 '나이스(NEIS)'인지 '네이스'인지가 정확히 뭔지 모를 수 있고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모를 수 있다.
다만 '우선 노조, 차후 교육'으로 착각할 정도로 어떻게 저리도 노조의 기(氣)가 드셀 수 있으며 교육 최고 책임자 또한 흑기(黑旗)를 들었다 백기를 올렸다 해 가며 엄청난 재정 낭비는 염두에도 없는 듯 'NEIS에 문제→유보→보완→재검토' 등 갈팡질팡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긴 미국의 교육학자 에버렛 라이머(Reimer)의 저서 '학교는 죽었다'와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레와 이반 일리히의 공저 '탈(脫)학교교육론'이 주목을 끈 지는 오래다. 전자는 오늘날의 교육이 중세의 교회처럼 인간 교육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일종의 '학교 해체론(解體論)'이다.
15세기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아그리콜라와 동양의 숱한 선현이 주창한 전인교육을 학교에서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린 다음 머리에 남는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의 학교 교육에 너무 기대를 갖거나 교육 환경을 답답해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오동환(논설위원)
교육인적자원부
입력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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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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