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의 블랑카치 성당에 걸린 아담과 이브의 초상화가 흥미롭다. 이브는 두 손으로 위아래 치부를 가리고 있는 데 반해 아담은 치부를 노출한 채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에라 차라리 눈을 가리자”는 아담의 수치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흔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운운' 하지만 하늘보다는 오히려 땅을 굽어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른다. 수치심의 대상은 우주보다 땅위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말이 '부앙무괴(俯仰無愧)'다. '땅을 굽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외모에 대한 수치심보다는 양심의 수치심이 크고도 진하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의로움의 실마리(羞惡之心 義之端也)'라는 '맹자'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수오지심, 즉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에겐 의로움, 올바름이 없다는 것이다.
수오지심과 더불어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비롯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 마음씨, '사단(四端)'이라 일컫는다. '사단' 중 하나가 모자라도 사람의 본성은 망가지고 수오지심이 빠져도 인격의 '격'은 결여된다. 나라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네 가지 수칙이 긴요하다고 했다.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다.
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수칙 중 하나가 수치심이라니! 그것은 집안 망신에도 부끄러움을 못 이겨 '괴사(愧死)'를 택했고 나라가 망해도 수치심을 참지 못해 '참사(慙死)'를 서슴지 않은 그 많은 의사, 열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줄줄이 검찰에 불려 가는 전직 핵심 고관들의 얼굴은 저럴 수가 없다.
“보라. 나 여기 왔노라”는 듯이 하늘에도 땅에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당당한 얼굴에다 여유로운 웃음까지 머금는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받은 적 없다” “사실무근이다. 모함이다”고 잡아뗀다. 영국의 속담에도 '수치심 없는 사람에게 양심은 없다'고 했거늘. 측근의 축재 의혹을 밝힌 노무현 대통령의 양심에 한 점 거리낌이 없기를 기대한다./오동환(논설위원)
수오지심(羞惡之心)
입력 2003-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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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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