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친구들, 나 먼저 가네. 남은 이 세상 마저 누려보시게'. 작년 8월20일 시인이자 극작가, 철학교수인 강월도씨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부산→제주 페리호 선상에서 검푸른 바다에 몸을 날렸다.

연극 '사(死)의 찬미'의 소프라노 윤심덕(尹心悳)과 극작가 김우진(金祐鎭)이 1926년 8월4일 시모노세키(下關)→부산의 관부(關釜)연락선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져 정사했다면 그는 같은 8월 남해에 뛰어든 것이다. 이른바 KS 마크의 학벌에다 미 콜롬비아 대학 철학박사인 그의 자살 이유는 그의 시집 '마지막 유혹'에서도 '카프카의 벌레'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듯이 파킨슨병이라고 했다.

지난 4월엔 수필가이자 H대 명예교수인 윤종혁(尹鐘爀)씨가 31층 옥상에서 투신했고 1월엔 장군의 자살만은 창군(創軍) 이래 없었다는 기록을 깨뜨리며 어느 육군 준장이 자살했다. 사회적인 지위나 영향력으로 미뤄 납득하기 어려운 자살의 예는 '자살대국' 일본의 경우 더욱 흔하다.

우리의 어느 교장이 지난 4월 노조와의 갈등으로 자살한데 반해 오노미치(尾道)시 다카스(高須)초등학교의 게이도쿠(慶德和宏) 교장은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을 하느냐 마느냐, 일본 왕의 연호(年號) 햇수를 서기 몇 년 앞에 쓰느냐 뒤에 쓰느냐 문제를 교사들과 다투던 끝에 작년 3월 자살했고 도쿠교(獨協)대 영어학 교수 카미오(神尾昭雄) 부부는 작년 2월 특급 열차에 손을 잡고 뛰어들었다.

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어느 일류대 시간 강사의 자살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석하다. 월 100만원 벌이도 안되는 근무조건에다 법률상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돼 있어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호법, 국민연금 등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니 이런 우리 사회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그의 '자살의 사회학'에서 '잘못된 제도 따위에 의한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주범인 사회를 체포, 구금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괴로워도 앞날을 기약, 좀 더 인내하고 극기(克己)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당사자만이 겪는 고통이야 아무도 섣불리 이해하려들 수 없는 일이지만./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