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顯忠日)'이란 순국한 선열과 국군 장병의 '충혼(忠魂)이 나타나는(顯) 날(日)'이다. 이런 현충일을 미국이 '기억하는 날(Memorial Day)'이라고만 하는 건 경박하고도 무엄한 것 같다.
날짜도 왔다 갔다 5월 마지막 월요일이다. 영국도 1차 대전 휴전 기념일(Armistice Day)인 11월11일 직전 일요일로 역시 '기억하는 일요일(Remembrance Sunday)'이다. 우리의 현충일을 고정한 건 잘한 일이다. 다만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악(惡)의 상징인 666을 연상케 해 좀 그렇고 섹스와 마약을 부추기는 록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음반 666이 떠올라 좀 안됐다.
현충일만 오면 가슴과 뼛속까지 사무치는 노래와 시가 있다. 한명희(韓明熙) 작사 장일남(張一男) 작곡의 가곡 '비목(碑木)'과 모윤숙(毛允淑)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 이 얼마나 구슬픈 가락이며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도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죽어간 마지막 말을…' 이 얼마나 처절한 시란 말인가.
오늘도 국립묘지의 하얀 비석들과 전사자 미망인들의 눈부신 소복 행렬부터 시야를 뒤덮고 그녀들의 하염없이 들먹거리는 어깨와 단장(斷腸)의 오열이 가슴을 파고든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16만2천여 영령 중 6·25 전사자가 80%를 넘는다.
스무남은 뜨거운 피로 죽어간 영령들과 청상과부들은 이제 모두 70을 넘긴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이를 악 물고 너를 보내리라/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 저 세상에서 이루려무나' 묘비를 부여안고 오열하던 부모들은 거의가 저승으로 떠나갔다.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스무남은 젊은 피로 죽어가며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을 보상하고 스무남은 젊은 아내와 유복자의 그 길고도 긴 사무친 원통함을 해원(解寃)해 줄 수 있는가. 군신(軍神) 마르스(Mars)와 대지의 신 가이아(Gaia)가 끌려온 전범(戰犯)으로 하여금 천만배(千萬拜) 사죄케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오동환(논설위원)
현충일
입력 2003-06-06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6-06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