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Oidipous Tyrannos)'은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이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神託)에 걸린 건 순전히 불운이었다. 비극은 그의 딸 안티고네에 까지 이어지니 신의 올가미에 걸린 인간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아비, 어미를 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존속살해는 '운명적 살인'이자 비극의 극단일 수밖에 없다. 어미를 살해한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도, 계부를 살해한 햄릿도 모두 존속살해의 숙명속에 파멸한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비극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간의 생래적인 업보가 수많은 비극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만일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햄릿을 현대 한국 법정에 세운다면 존속살해죄 부분에서는 판결이 갈라질 듯하다. 형법상 존속살해죄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죽이는 범행이다. 그런데 죄가 성립하려면 존속의 범위를 확정할 법적 관계가 있어야 하고 살해의도가 있어야 한다.

양자가 친부모를 살해하거나, 혼인 외의 출생자가 실부(實父)를 살해해도 보통살인죄로 처벌 받는 이유다. 결국 젖먹이 시절 아비에게 버림받은데다 아비인 줄 모르고 아비를 살해하는 오이디푸스는 보통살인죄를, 어미를 작정하고 살해한 엘렉트라나 비록 계부이지만 법적 아비를 고의로 살해한 햄릿은 존속살해죄가 되는 셈이다. 여하튼 이들에게는 세상이 동정할 만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으니 법도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지 않겠는가.

최근 카드빚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할머니와 어머니를 살해하고 형을 중태에 빠트린 채 도주했다가 PC방에서 검거된 전직 대학생이 애인에게 보낸 '끔찍한 이메일'이 화제다. '오늘 식구들 작업했다가 실패했다. 엄마랑 할머니까지 성공했고 형도 거의 성공해서 아빠만 남았는데…'. 존속살해를 '작업'이라고 표현한 정신 상태도 가공할만 하지만, 자기가 살해했거나 살해를 시도한 혈육을 '엄마' '아빠'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으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인지상정을 상실한 금수의 만행이 아닌가. 부모를 죽이는 일이 '작업'이 된 세상이라니. 앞으로 더 이상의 비극은 없지 싶다.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