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1783~1842)은 필명을 자주 바꾸기로 이름나 있다. 본명은 앙리 베일이지만 100개의 필명을 가졌다. 또 고사성어 중에는 사이 나쁜 사람끼리 공동이익을 위해 행동을 같이 할때 ‘오월동주(吳越同舟)’라 한다.
손자(孫子)는 적과의 싸움에서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사지(死地)에 놓였을때 병사들은 함께 배를 타고 사나운 강물을 건너듯 마음을 합쳐야 활로를 찾을 수 있다면서 ‘오월동주’의 예를 들었다.
길을 찾기 위해 손잡고 분전하는 ‘오월동주’는 군사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신당 창당을 서둘고 있는 민주당이 ‘오월동주’의 경우다. 신주류 강경파, 중도파, 구주류 등이 저마다 벌이고 있는 신당 창당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8·8재보선서 한나라당에 참패하자 민주당내 ‘친노(親盧)’ ‘반노(反盧)’진영은 즉각 신당창당추진에 합의했었다. 지방선거에 이어 재보선에서도 대패하자 ‘DJ당’의 이미지가 강한 민주당 간판으론 대선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 ‘살 길은 신당 창당’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대선 당시 선거홍보물에는 아예 '새천년민주당'이라는 글자가 깨알처럼 줄어들기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급기야는 최근 들어 민주당이 분당의 위험까지 몰리고 있는 상태다. 신당 창당을 놓고 싸움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신당창당논의를 위해 16일 열린 민주당 당무회의에서는 신주류와 구주류간에 '이 놈, 저 놈' 등의 막말이 오가는가 하면 심지어 '밟아버리겠다'는 등 난장판이 됐던 모양이다.
'비렁뱅이끼리 자루를 째는 것' 같은 싸움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역시 당권경쟁이 치열하고 당 이름을 변경하자는 논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야당의원의 말처럼 '정당 간판'을 '식당 간판' 갈 듯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이름만 갈면 뭐하냐는 것이다.
호박에 줄친다고 수박이 될 수 없고, 한번 시집을 갔다가 재혼한다고 해서 새색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신당도, 당권도 좋지만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이준구(논설위원)
호박에 줄긋기(?)
입력 2003-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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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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