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4월 미 플로리다주 머린랜드에서는 22세의 석녀(石女) 돌고래 리즈 양이 모성본능을 억제치 못해 베리라는 동료 고래가 갓 낳은 새끼를 두 번이나 납치했다.

그런데 낯선 어미의 젖을 거부한 새끼 고래는 굶어죽고 모성간에는 머리끄덩이(?)를 꺼드는 격투가 벌어져 사육사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 침팬지들의 납치극도 잦다. 그러나 이런 동물들의 납치극엔 애교나 있다. 옛날 청상과부를 자루 씌워 납치하던 보쌈 납치극에도 애교가 있고 에로틱하고도 로맨틱했다.

하지만 인간 동물의 납치극은 살벌하기만 하다. 유괴, 인질, 구타, 강간, 테러, 살인, 생매장 등 납치 연관어(聯關語), 내포어(內包語)만 봐도 소름이 끼치고 영화에도, 폭력 드라마에도 납치 장면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납치극은 일상화해버렸다.

한데 작년 11월13일 영국의 BBC방송이 런던 소재 외교정책센터(FPC)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이제 납치라는 범죄는 기업화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이 됐다”고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예컨대 최근 모스크바 문화궁전에서 체첸 반군들이 벌인 인질극과 영국 축구 스타 베컴의 가족 납치 시도 등 전 세계에서 매년 1만건 이상의 납치극이 발생하고 있고 연간 5억달러(약 6천억원)를 강탈한다는 것이다.

FPC 보고서 작성자 브릭스(Briggs)는 납치 다발지역으로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필리핀, 구 소련 지역을 꼽는다. 거기에 빠뜨린 나라가 있다면 레바논의 베이루트, 그리고 단연 북한일 것이다.

6·25 납북인사로부터 KAL기, 푸에블로호 납치에다 영화인 등 유명인 납치, 일본인 납치 등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최근에야 '북한=탈북'을 연상하지만 그전엔 '북한=납북'이 아니었던가.

요즘 돈이 많아 보이는 부녀자 납치 행각이 부쩍 늘어 경찰에 비상이 걸리고 대통령까지 한 말씀 덧붙였다지만 어쨌거나 조심하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납치 위협을 피해 조국 콜롬비아를 등졌다는 안토니오 가르시아(Garcia)의 말처럼 “이제 납치범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마치 대리점에 할부금을 납부하는 것과 같다”며 한탄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