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세상살이를 풀어주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술 한잔이 제일이라는 것이 애주가들의 말이다. 사회생활을 성공하기 위한 비결의 하나로 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애기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간은 술에 젖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술을 즐긴다. 그러나 과음과 폭음 뒤에 찾아오는 괴로운 징후들은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부인들은 다음날 아침이면 해장국 끓이기에 분주해진다.
우리 나라에는 해장국의 종류도 많고 조상들은 지혜를 발휘해 숙취해소에 좋은 묘안들을 짜내기도 했다. 으뜸으로 치는 콩나물해장국을 비롯해 선지 북어 우거지 뼈다귀 올갱이 순두부 황태 순대 조개 복어 볼태기 재첩국 서더리탕 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콩나물에는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돼 있어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해주는 효소의 생성을 돕는다. 김치가 사스예방에 좋기로 이미 이름이 났지만 해장국에도 곧잘 들어간다. 김치의 주된 발효균의 하나인 류코노스톡(Leuconostoc)이라는 성분이 숙취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인하대 미생물생태연구실이 밝힌 바 있듯이 김치는 정말 최고의 식품임에 틀림없다.
이밖에도 비타민 A, B, C와 특히 F가 풍부해 간과 성인병에 특효가 있다는 올갱이해장국, 선지해장국, 북어해장국 등은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메뉴들이다. 해장국은 옛날 '해동죽지'라는 책에 '뜨겁되 맵지 않으며 담백해야 하고 소화가 잘 되도록, 부드러우면서도 영양이 풍부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원래는 해장국은 '술국'이라고 했고 유식한 사람들이 '성주탕(醒酒湯)'이라고 하던 것이 해장국(解腸湯)으로 불리게 된 것은 8·15 광복 이후 술기운에서 해방시킨다는 뜻이 강하게 작용해서 '해장'으로 일반화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 음식 전문기자인 에릭 아시모프는 지난 18일 뉴욕 33번가에서 해장국을 시식한 뒤 “한국의 술꾼들은 폭음한 다음날 어김없이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왔다”며 “선지와 내장, 그리고 무를 오랜 시간 고아 만든 해장국은 마치 마녀가 만들어낸 국물을 연상시킨다”고 극찬했다. 이쯤되면 해장국에 관한 한 선진국임을 자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준구(논설위원)
해장국 선진국
입력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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