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를 일본인들은 '송이밤 머리'라고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로는 '뭉구리'다. 낙발(落髮), 낙식(落飾)이라고도 하는 삭발은 사랑, 지조, 맹세, 반윤리, 불효, 책임, 위협, 항의, 저항, 수행, 고행, 금기, 금욕 등 뜻도 여러 가지다. 애인과 이별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 바꿔 갖는 게 사랑과 지조의 맹세라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사상은 불효와 반윤리적 행위를 막는 길이다.

신사임당조차 남편과 싸울 때 항의, 위협한 말이 “삭발하겠다”였고 나치즘에 대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저항)의 뜻도 삭발이었다. 책임, 고행의 뜻도 강하다. 파푸아뉴기니와 태국, 미얀마의 성년식은 삭발, 고행으로 시작된다. 하긴 미국의 영화배우 율 브리너처럼 멋으로 깎는 예도 있긴 하다.

삭발의 대표적인 뜻은 역시 종교적인 금기, 금욕이다. 불교의 삭발식은 번뇌초(煩惱草), 무명초(無名草)라 이르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의식이고 '출가'와 '까까승려'를 상징한다. '속세를 등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천주교에서도 신품(神品) 성직자와 수사(修士) 지원자의 삭발 의식이 있다. 별나게도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머리만 깎고 수염은 남겼다. 세상은 등졌지만 장부임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승려도, 기타 종교인도 아닌 까까머리는 스쳐가기만 해도 섬뜩하다. 방금 탈옥한 흉악범이나 소림사 무술영화의 그 무시무시한 고수를 떠올려 오싹하기 때문이고 창백한 얼굴의 백혈병 환자나 뇌수술 환자를 연상해 가슴이 찡하기 때문이다.

60년대부터 네오나치즘을 표방, 살인과 방화를 일삼는 구미, 러시아쪽 까까머리족(skin head族)은 어떤가. 특히 히틀러의 생일인 4월20일엔 공포에 휩싸인다. 주로 외국인에 대한 스킨헤드족의 공격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전쟁 태세를 뜻하는 북한의 삭발령도 무섭다. 93년 11월 유엔이 북한의 핵사찰 수용 결의안을 채택하자 즉각 전군에 내려졌던 게 삭발령이었다.

요즘 노사분규와 환경운동 등으로 수백명, 수천명이 집단 삭발식을 벌이는 등 온통 까까머리 세상이 돼버렸다. 생존 투쟁도 좋지만 꼭 삭발을 해야만 투쟁 의지가 강해지는 것인가. 왠지 두렵기만 한 세상이다.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