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시절 음식점 메뉴의 '백반'이 뭐냐고 어른께 물었다가 핀잔을 받았고 '이밥(함경도 사투리로 이팝)'이라면 혹시 몸 속에 굼실거리는 이를 넣은 밥이 아닐까 궁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글자 그대로 하얀 쌀밥인 '백반(白飯)'이 아니라 보리쌀을 섞어 누리끼한 '황반(黃飯)'도, 거무튀튀한 잡곡밥도 '백반 값'을 주고 사 먹던 추억
또한 또렷하다. 하긴 요즘의 흑미(黑米)밥도 백반이라 부르긴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쌀을 따미(大米), 조를 샤오미(小米), 옥수수를 위미(玉米)라 하여 '쌀 미(米)'자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만큼 쌀밥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미국을 '쌀의 나라(米國)'라고 부르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쌀밥이 최고, 최상이다. 쌀이 없어 '조강지처(糟糠之妻)'라고 할 때의 그 술지게미(糟)나 겨(糠)죽을 먹는 것은 '고생바가지'의 상징이었다.
5천년 전 쌀 재배가 시작된 직후든 '동경(慶州) 밝은 달에…'의 '처용가' 시절이든 쌀밥 없는 삶은 비극이었고 '신도주(新稻酒) 올려(올벼) 송편 박나물 토란국에…'의 '농가월령가' 시절이나 '기아(飢餓) 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의 5·16 공약 그 때든 쌀밥 못 먹는 세 끼는 한심한 허탈의 연속일 뿐이었다.
김일성이 연두교시 때마다 강조한 것도 '고깃국과 흰쌀밥의 낙원'이었듯이 '쌀밥+고깃국=최상'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어떻고 어떻도록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높은 영양가에다 향기, 맛, 혀끝의 감촉, 미려함, 조직감(組織感) 등이 뛰어난 새하얀 쌀밥이라니! 그것도 방금 당의(糖衣)를 벗어 해맑은 배젖(胚乳)이며 파릇파릇한 씨눈(쌀눈)이 싱싱한 오례쌀(햅쌀)밥이라니! 그 윤기 자르르한 쌀밥을 '囍(희)'자 고이 그려진 사기 사발에 담아 시뻘건 김치와 함께 먹는 맛이란 그 무엇에 비견하랴. 국방부가 7월부터 병사용 급식의 보리밥을 쌀밥으로 바꾸자 성인병, 비만 등 문제가 있다며 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과 논란이 아닐 수 없다. 반찬만 잘 아우르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련만…./오동환(논설위원)
쌀밥
입력 2003-07-0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7-0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