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성적 취향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받아 온 학대는 사실 끔찍한 것이었다. 특히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남색(男色)은 최고의 금기였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혜공왕이 여자같이 행동한다 하여 신하들이 죽였다는 기록이 있고,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에 남색의 죄를 범한 자들이 벌을 받는 구역을 따로 묘사했을 정도다. 그러나 남색을 비롯한 동성애는 법과 윤리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면면이 이어졌다. 특히 대규모 동성집단, 즉 군대나 종교단체 등에서 벌어지는 동성애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감옥에서 벌어지는 남색과 동성간의 강간을 묘사한 할리우드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 지구촌은 '동성애가 천부적 인권인가'라는 글로벌 토픽으로 뜨겁다. 이성애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동성애자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유럽에서 열린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시위에 참석한 100만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과 동성애자들 간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는데, 동성애자인 베르트랑 들라노에(Delanoe) 파리 시장과 클라우스 보베라이트(Wowereit) 베를린 시장이 선두를 이끌었다. 그 결과인지는 몰라도 최근 미 대법원이 남색금지법을 위헌으로 결정하고 캐나다 연방정부가 동성결혼 허용을 추진하고 있으니, 서구에서는 동성애자의 성 취향도 천부(天賦)의 권리로 인정받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동성애자들 역시 지난 6월 서울에서 1천여명이 참여한 '퀴어(queer) 문화제'를 열어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외쳤다. 4년 전 1회 대회 때 20~30명이 참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땅에서도 양지를 지향하는 동성애자들의 의지가 점차 고조되는 추세인 셈이다. 문제는 남색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이 매우 완고하다는 것이다.

최근 군대내 동성 성폭행 사건만 해도 그렇다. 남색을 경멸하는 전통속에서 가해자의 범행은 은밀하게 계속되고 피해자는 평생 가슴속에 응어리를 갖고 살거나 자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세계적 추세가 아니더라도 이제 동성애자의 인권과 동성간 성폭력 처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할 때가 됐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