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음) 장마에 돌도 큰다'는 속담이 있다. 매일같이 물을 뿌려대니 돌이라고 해서 자라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시적(詩的) 표현이다.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를 한다'는 속담도 있다. 무엇인가 원망(怨望)하는가 싶긴 한데 발음이 똑똑치 않게 입 속으로만 웅얼거림을 뜻한다. '비 맞은 × 담 모퉁이 돌아가는 소리'인 모양이다. '승선입시(乘船入市)'라는 말도 있다. 배를 타고 시장에 들어갈 만큼 큰물이 지는 장맛비를 가리킨다. 가장 긴 장마는 구년지수(九年之水), 9년 동안 지속되는 장마로 7년 가뭄(七年大旱)보다 2년이나 길다.

장마라는 한자는 '霖(림)'으로 수풀처럼 내리는 비의 상형(象形)이다. '좌전(左傳)'에 보이는 '매림(梅霖)'을 비롯해 '장림(長霖)' '임우(霖雨)' '임림(霖霖)' '임력(霖瀝)'이 모두 장마라는 말이다. 중국에선 열흘 이상 오는 비를 '음우'라 한다. '음'은 비 우(雨) 밑에 음탕할 음(淫)자가 붙은 글자로, 장맛비를 가리켜 음탕한 비라고 했다. 일본에선 또 '매우(梅雨·쓰유)'라 한다. 특히 음력 5월 매화 열매가 파랄 때 오는 비를 '청매우'라 하고 노랗게 익을 무렵 내리는 비를 '황매우'라 부른다. 거셌다 약했다 하는 비가 '남청매', 꾸준히 오는 비가 '여청매'인가 하면….

물난리 걱정부터 앞서는 게 장마다. 그래선가 오래 오는 비(久雨, 積雨)를 '쌓이고 쌓이는 걱정'에 비유했고 '長雨=걱정'으로 여겼다. '零(영)'이라는 글자만 해도 그렇다. 흔히 제로(0)로만 알지만 '시경(詩經)'에도 보이듯이 원래 '비올 영'자다. 장맛비처럼 지나치게 내리거나 반대로 아주 조금 내렸다간 마치 0, 0…이 내리듯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절묘한 글자가 바로 '零'이다. 더구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悲愴)'이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곡)을 들으면서 하염없이 창 밖의 장맛비를 내다보거나 해 보라!

남녘 땅엔 이미 많은 피해를 안긴 장마 전선이 꾸물거리다 드디어 중부 이북까지 올라왔다. 적당히 웬만큼 뿌려 주고 아쉬운 듯 지나가는 장맛비라면 좋으련만./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