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도 휴가를 준다. 지력(地力) 감퇴를 막기 위해 재배를 중지하는 게 휴한(休閑) 또는 휴경(休耕)이다. 사람의 생산성과 창조력 향상을 위해서도 쉬어야 하고 휴가가 필요하다. 중국 한(漢)나라는 관리들에게 닷새에 하루의 휴가를, 당나라 때는 열흘에 하루씩 집에서 쉬며 목욕을 하도록 했다. 그런 휴가가 '휴목(休沐)'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한나라는 일찍이 '5일 근무제'를 실시한 선진국인데 반해 당나라 사람들은 열흘씩이나 목욕을 하지 않은 미개인이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며칠쯤의 휴가가 적당할까. 결혼 때도 15일씩이나 휴가를 주는 프랑스는 5주까지의 여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1997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볼가강 유역 별장에서 한 달간 여름 휴가를 보냈고 그 해 콜 독일 총리는 4주, 클린턴, 블레어, 시라크는 3주씩 쉬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직전인 재작년에도 유유히 한 달간 바다낚시와 농장 일 등으로 보냈고 작년에도 거의 한 달간이었다. 미국에선 '서배티컬 리브(sabbatical leave)'라고 해서 대학 교수 등의 연구와 여행을 위해 7년마다 1년씩 주는 휴가도 있다. 기업들도 재충전, 인푸트(input)를 위해 비슷한 장기휴가를 준다. '서배티컬 이어(sabbatical year)'라는 유태인의 안식년(安息年) 또한 7년만에 1년씩이고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도 7년에 한 해씩 쉰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초 일본 도쿄가스, 후지제록스, 닛폰IBM, JAL 등은 최장 2년까지의 유급 봉사활동 휴가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불황인 작년 여름 휴가는 '싸게(安), 가깝게(近), 짧게(短)'가 특징이었다. 이제 절정인 우리네 직장인의 이번 여름 휴가도 비슷한 사정인 것 같다. 그런데 꼭 막히는 고속도로를 멀리멀리 달려 바닷가로만 가야 맛이고 멋인가. “인생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A=X+Y+Z'라고 대답했다. A가 인생이라면 X는 일, Y는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Z는 무엇일까. 그게 바로 '침묵'이라는 것이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대청마루, 거실 바닥에 기다랗게 누워 밀린 책을 보거나 끝없는 침묵 속에 침잠해 보는 것은 어떨까./오동환(논설위원)
여름 휴가
입력 2003-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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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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