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entertainer), 연예인으로 꼽히는 보브 호프(Bob Hope)가 100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연예인'이라면 글자 그대로 '재주, 예술(藝)을 펼치는(演) 사람'이다. 그런데 장장 100년을 누리면서(享年) 예술을 펼쳤는데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할 것인가. 어쨌거나 코미디언, 배우, 가수, 쇼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그가 펼친 연예, 예술 인생의 여운은 영원할 것이다. 작년 5월29일 99세 생일엔 미국 정부가 LA 국립묘지에 그의 이름을 딴 교회를 헌정했고 100세 생일인 지난 5월29일엔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국의 30개 주가 '보브 호프의 날'로 정한데다가 LA의 할리우드가(街)와 바인로(路)가 교차하는 네 거리 광장을 '보브 호프 스퀘어'로 개칭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는 이름도 이름 나름이다. 그의 이름은 진하고도 질기게 남을 것이다. 지난 5월 할리우드에서 열린 100세 탄생일 축하 행사 땐 해병대 악단이 그의 데뷔작 '100달러 대방송'의 주제가 'Thanks for the Memory'를 연주했고 하늘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항공기 4대가 기념 비행을 펼쳤다. 그날 가장 열렬한 박수를 보낸 쪽은 그의 아들과 손자들, 그리고 절친한 친구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아들 마이클 레이건이었다. 그러나 주인공 보브 호프와 부인 돌로레스(94)는 보이지 않았다. 2000년이래 거동이 불편한 탓이었다.

그가 1987년 5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공군기지에서 열린 84회생일 특별 공연 때 나란히 선 친구 레이건보다도 돋보이고 더 많은 박수를 받은 까닭은 무엇인가. 레이건처럼 배우에서 정치가로 표변치 않은 채 연예의 길만을 고수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공주와 해적' '겁쟁이 쌍권총'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첫 영화 '1938년의 대방송'에서 셜리 로스와 함께 부른 노래는 오스카상을 타기도 했다. 웃기고 노래 불러 세상을 즐겁게 한 그는 이름 그대로 20세기 인간 정서의 '희망(Hope)'이었다. 행복했던 지상의 삶이 지하에서도 그렇게 이어질 것인가.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