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는 '하야(下野)'를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야인이 됨'이라는 뜻으로 새겨놓았다. 평생 관료로서 명예롭게 봉사하다가 말년에 낙향해 남은 생을 표표히 즐기는 삶을 일컫는 듯 하다. 상상해 보라. 목민(牧民)의 사명을 다하고 부모가 낳아준 곳으로 돌아가 순전히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만끽하며 목가적인 삶을 즐기는 관리의 모습을. 하야는 이렇듯 태평의 시대에 어울리는 은퇴한 관리의 삶이다.

그러나 하야에 정치가 개입되면 삶의 궤적이 매우 복잡해진다.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절친한 벗이었다. 그러다 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자 벼슬을 던지고 하야했다. 방원은 길재에게 출사를 간청했지만 길재는 자신이 '망국(고려)의 포로'라며 극구 사양하고 독야청청했으니 정변의 시절에는 하야 마저 용기가 필요했다. 하야 인사의 대표격인 중국의 백이숙제를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 성삼문은 '새 왕조의 땅에서 돋아난 나물을 뜯어먹었다'하여 책망했을 정도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도 하야의 오욕으로 얼룩진 세월이다. 국민을 조금만 두려워할 줄 알았더라면 '국부'로 추앙받았을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에 격분해 들고 일어난 4·19혁명으로 하야해야 했고, 윤보선과 최규하는 군부 쿠데타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 하야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이들 처럼 하야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과 자식의 원죄로 하야 못지 않은 침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한국 정치에서 '하야'는 강제에 의한 헌정중단이나 권력 유고 상태를 의미한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관과 청와대 참모진이 참석한 국정토론회에서 '대통령 하야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부당하게 짓밟고, 항의한다고 더 밟고, 맛볼래 하며 가족을 뒷조사하고, 집중적으로 조지는' 언론을 성토하던 끝에 나온 말이다. 글쎄, 언론이 언제 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야'라는 단어의 정치적 극단성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이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었지 싶다. 노 대통령 만큼은 하야의 참된 의미를 실천해주었으면 하는데 요즘 대통령 주변이 그렇지 못한 건지 걱정이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