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노무현)의 언론사 고소 사태란 '유례가 없는 희한한 일'이라는 세간의 화제가 뜨겁다. 그러나 유례는 있다. 1995년 7월26일 싱가포르 대법원이 “IHT(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는 고척동(吳作棟)총리와 리콴요(李光耀) 전 총리, 아들 리시안롱(李顯龍) 부총리에게 도합 95만 싱가포르 달러(약 6억7천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그 사건이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부총리가 됐다는 보도, 족벌정치의 폐단을 꼬집은 IHT에 격분, 현직 총리와 부총리가 다정히 어깨를 겯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국 법원에 제소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언론도 작폐(作弊)는 있을 수 있다. 일본의 TBS(도쿄방송)는 96년 4월30일 저녁 7시부터 장장 4시간에 걸쳐 사과방송을 '단행'했다. 89년 10월 옴진리교에 비판적이던 사카모토(坂本堤)변호사의 인터뷰 내용을 노출함으로써 살해당한 변호사 일가에 대한 사죄 방송이었다. 한데 TBS가 더욱 가증스러운 건 인터뷰 내용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신문의 포열(砲列)은 무책임이라는 포탄을 장전해 우리(정부)를 향해 발사했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1805년)처럼 언론도 더러는 무책임할 수 있고 검증이 부실한 내용을 왜곡 보도할 수도 있다. 그래선가 클린턴은 94년 3월 ABC TV에서 언론을 “소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선진국 대통령은 언론 비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4선의 루스벨트도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진 않았어도 그랬고 고르바초프는 87년 7월 “언론이 금기로 여겨왔던 것까지 모두 깨뜨리는데 찬성한다”고까지 했다. 비센테 폭스 멕시코대통령은 더 가슴이 넓다. 지난 5월20일 신문 판매원 행사에서 “중상 모략하는 언론자유까지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며 대형 전지(剪枝) 가위로 나카소네(中曾根)의 혀를 자르는 만화(86년 6월)도 실릴 수 있고 조지 부시가 권총에 암살 당하는 만화(지난 달)도 햇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좀 당할지언정 어용언론, 곡필 언론인은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기 때문이다./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