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사람치고 선경직물을 모르는 이는 없다. 지금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회장이 구속돼 있는 상태이고 그룹의 앞날이 어둡지만 여하튼 국내 5대 재벌그룹의 하나인 SK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1953년 수원 출신의 최종건 선대 회장이 6·25로 폐허가 된 수원 평동 3만4천여평 부지에 직물공장을 재건했다. 지금도 수원에서는 술자리에서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을 '선경직물이 있다'고 농담해도 알아들을 정도로 기성세대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이다.

선경직물은 직물산업이 호황기를 누리던 60~70년대 직원만도 2만2천여명에 달하고 수원 최대 고용창출기업으로서 왕성한 산업활동을 벌였다. SK그룹 성장의 기반을 닦은 공장인 셈이다.

1962년 미국에서의 학업도중 부친의 부름을 받고 귀국 후 곧바로 선경직물의 이사로 취임한 고 최종현 회장이 SK의 경영에 직접 뛰어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고 당시 32억원에 달하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테르 원사공장 건설을 1969년 짧은 공기 내에 준공시켜 국내 관련업계는 물론이고 경제계 전체를 경악하게 하기도 하며 성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손길승 현 그룹회장도 1965년 선경직물에 처음 입사한 사람이다.

그러나 직물산업의 사양화로 직원이 감소하기 시작, 1985년 현 SK케미칼 평동공장의 전신인 선경합섬으로 넘어가면서 직원이 600명으로 감소된 뒤 매년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현재 12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등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원시가 1994년 기흥∼호매실IC 산업도로 건설계획을 수립하면서 산업도로가 공장 한복판을 가로지르게 설계돼 공장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 SK케미칼도 최근 본사 임원회의를 통해 평동공장에 대한 공장폐쇄를 결정해 노조측이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측은 누적적자가 795억원에 달하는 데다 시설 이전비와 인건비, 도로개설 등을 내세워 오는 9월까지 공장을 폐쇄한다는 것이다.

수원 산업의 도화선이자 SK그룹의 모태였던 선경직물 평동공장이 직물산업의 사양화와 도로개설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를 맞아 SK그룹이 처해있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준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