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名啣)은 춘추전국시대 공자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래된 자기소개서다. 정조때 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보면 우리나라도 조선조 초기부터 명함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초에 집안사람들이 모두 하례하러 나가고 없을때 하례차 찾아온 사람들이 이름을 적어 놓아둔 명함이 그것이며 정초에만 사용된다하여 세함(世銜)이라고 불렀다. 순조때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전국 관청에서 세함을 이용, 인사를 나누었다는 기록도 있다.

요즘과 같은 형태의 명함이 사용된 것은 1920년대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에 의해서다. 당시 몇 안되는 전화의 번호와 이름, 직책을 적은 작은 쪽지를 나누었는데 이때 사용한 명함을 '명편'이라고도 불렀다. 일제말기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은 순금으로 된 명함을 사용, 일본총독과 면담을 성사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1560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유학갔던 독일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기전에 교수에게 인사를 갔다가 부재중인 교수에게 자신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남긴 것이 시초며 프랑스는 16세기 루이 14세때 지금과 같은 동판인쇄명암이 사교계를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사장과 중역 일반사원들이 사용하는 명함이 다르다. 사장이나 중역용은 명함 중앙에 이름을 넣고 하단에 직위와 회사명을 쓰는 반면 사원용은 명암중앙에 회사명을 쓰고 성명과 소속부서 그리고 회사주소 등을 좌측하단에 넣는다. 물론 규격화된 사항은 아니지만 일반적 명함의 포멧이 그렇다. 같은 직장의 경우 직급에 상관없이 각자의 이름만 다른 명함을 쓰는 우리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표기의 방법과 관계없이 명함은 한 개인의 이름과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대신해 주는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직책이 없으면 명함조차 만들지 못할 지경이니. 최근 한나라당이 이런 세태를 간파(?)나 한듯 51명의 부대변인을 무더기로 임명했다. 직책이 없어 고민하던 사람에겐 당의 배려로 또다른 명함을 만들 명분이 생긴 셈이지만 왠지 보는 뒷맛이 씁쓸하다./정준성(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