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至尊)의 권위와 체면을 꾹꾹 참고 교황도 사과를 한다. 2001년 5월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 아테네공항에 도착, 로마 가톨릭 교도인 십자군이 1204년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동방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함으로써 동방정교회와의 관계를 단절시킨 데 대해 공식 사과를 한 것이다. 장장 800년 만이었다.

남미 우루과이의 호르헤 바트예대통령은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모자라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르헨티나는 도둑들의 소굴”이라는 발언에 대한 사과차 작년 6월4일 그 나라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을 찾아갔던 것이다.

한데 국가간의 사과에는 그 외교 수사(修辭)를 싸고 종종 해프닝도 벌어진다. 재작년 10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고이즈미(小泉純一郞)총리와 간(菅直人) 민주당 간사장이 'Show the flag'라는 표현의 해석을 놓고 영어사전까지 들춰가며 논쟁을 벌였다.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주미 일본대사에게 한 이 말의 뜻이 뭐냐는 논쟁이었다.

고이즈미총리가 “그야 말 그대로 '깃발을 보여달라, 즉 이라크에 파병을 해 달라'는 뜻이 아니냐”고 하자 간 간사장은 영어사전을 펴 보이며 “그게 아니라 '태도를 분명히 하다' '지지를 표명한다'는 뜻의 숙어”라고 반박한 것이다.

재작년 미 정찰기 승무원의 중국 억류 때는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선택하는 단어인 regret(유감)를 표시하자 중국 측은 apology(사과)를 요구했다. 중국어의 '이한(遺憾)'에는 죄책감이나 사과의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감'보다는 뜻이 강한 중국어 '따오치엔' 또는 '빠오치엔'에 가까운 단어는 apology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최종 선택한 외교 수사는 'very sorry'였다. '유감'과 '사과' 사이의 단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동족간엔 이런 외교 수사의 논란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인공기 훼손에 대한 '유감' 표시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오지 않겠다던 북한 선수단이 오늘 개막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71개국 8천명 선수의 한 점 '유감' 없는 선전을 기대한다.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