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권은 유머를 양산하는 분야로 서구에서는 유머가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 된지 오래다. 미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존경받는 링컨은 추남으로도 유명한데 하루는 의회에서 반대당 의원이 흥분한 나머지 '두 얼굴을 가진 파렴치한 이중인격자'라고 막말을 해댔다.

그러자 링컨은 “여보, 내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하필 이런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하며 웃어 넘겼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힝클리가 쏜 흉탄에 쓰러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된 상황에서 집도의에게 공화당원인지를 물었다. 민주당원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는 뜻이지만 물론 유머다. 링컨의 유머에는 미국을 통합시킨 겸허한 리더십이, 레이건의 유머에는 대통령 유고를 걱정하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침착한 리더십이 농축되어 담겨있다.

한때 양김(兩金)씨들이 자주 회동하던 시절의 유머다. 먼저 DJ(김대중 전대통령)가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언변으로 대여투쟁의 당위성을 1시간59분에 걸쳐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그러면 YS(김영삼 전대통령)는? 지그시 눈을 감고 DJ의 달변을 끝까지 경청한 YS는 '됐으니 이제 합의문에 도장을 찍자'며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합의문을 꺼내 펼친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나 회담장 문이 열리면 항상 웃고 있는 사람은 YS였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토론형 정치인 DJ와 담판형 정치인 YS의 정치스타일을 풍자한 유머인 셈이다. 이렇듯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유머에는 리더십의 성격, 개인적 인격이 담기게 마련이다.

최근 한나라당 당직자가 공식석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에 빗댄 시중의 유머를 옮겼다가 구설에 오른 모양이다. 노 대통령과 개구리가 닮은 점 다섯가지 중 김병호 홍보위원장이 '올챙이적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며 가끔은 슬피운다'고 세가지만 말하고 나머지는 기억을 못하자, 박주천 사무총장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생긴게 똑같다'라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이쯤이면 청와대나 민주당은 한토막 유머 조차 제대로 기억못하는 한나라당 당직자의 나쁜 머리를 '조두(鳥頭)'쯤에 빗댄 유머로 대구하는 것이 좋을 뻔 했다. 정색하고 반응하면 꼴만 우스워지는 것이 유머의 속성이기 때문이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