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11월 19일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은 너무나 유명하다. 남북전쟁 격전지였던 미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스버그에 조성된 국립묘지에서는 그 날 전몰용사 위령식이 열렸고 첫 연사로 등단한 유명한 교육자이자 웅변가인 에드워드 에버렛은 장장 2시간의 장황한 연설을 했다.

이어 링컨이 단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단 2분간의 짧은 연설 끝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끊이지 않도록…'이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다음 날 신문들은 에버렛의 장황한 연설은 칭찬했지만 링컨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연설했다'고만 간단히 덧붙였다.

한데 링컨의 그 짧은 연설의 가치를 인정한 사람은 대통령을 두 번째로 연설케 한 진행자 측도 아니었고 청중도 언론도 아닌 에버렛 그였다. 그는 곧바로 링컨에게 편지를 썼다. “각하께서 불과 2분만에 도달하신 식전(式典)의 핵심에 제가 2시간에 걸쳐 간신히 이를 수 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링컨도 답장을 썼다. “당신의 판단으로 내 연설이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습니다.” 짧은 눌변(訥辯)이라도 내용있고 진실에 찬 연설이라야 통한다는 것은 에바크를 이긴 그의 대통령 선거전 연설이 그랬고 닉슨의 웅변을 이긴 케네디의 연설이 그랬다.

조리있고 진실에 찬 강한 호소력이야말로 긴 연설의 필수조건이다. 그걸 유감없이 증명해 보인 게 1959년 34세 대처의원의 첫 의회 연설이었다. 그녀가 메모 한 줄 없이 30분간 설파한 '처녀 연설'은 모든 동기 의원을 압도했고 그 이상의 연설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당시 신문들의 격찬이었다.

그런데 엊그제 이 땅의 한 신문엔 참으로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청와대 전국 시·군·구 의회 의장 오찬 간담회의 노무현 대통령 연설에도 한 구 의회 의장이 고개를 젖힌 채 달콤(?)하게 졸고 있는 모습이다. 도대체 대통령의 연설이 어떠했길래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권위주의시대와는 달리 차후 그 의장님의 신상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호시절 만끽 감(感)이다./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