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선생은 남에게 법도에 벗어나는 선물은 한번도 받아본 일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산(陶山)에 왔을 때 김이정이라는 사람이 노새를 선물로 보내온 일이 있었다. 이미 연로했으므로 나들이를 다닐 때에 타고 다니라고 보내준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받지 않고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물었다. 옛날 공자(孔子)는 친구가 보낸 거마(車馬)를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고 하는데, 내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선생은 대답했다. 공자는 의로운 선물이었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받은 것이다. 다시물었다. 그러면 받으신 노새는 의로운 선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남의 선물을 받는데는 법도가 있는 법이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남에게 거마를 선물로 주는 법은 없다. 부모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도를 몰라 단순한 호의로 나에게 노새를 보냈지만 법도를 알고 있는 내가 어찌 그 노새를 받을 수 있겠느냐.
그런가하면 조선 성종때 청백리(淸白吏) 이약동(李約東)은 제주목사로 있다가 떠날 때 제주도민들이 청백에 감격하여 선물한 갑옷을 뒤늦게 발견하고 받을 수 없다며 바닷속에 던졌다는 기록도 있다. 뒷날 사람들은 그곳을 투갑연(投甲淵)이라 부르며 생사당을 지어 선생의 청빈을 기렸다고 한다.
비록 호의를 보이는 것이지만 이렇듯 받는 사람에게 조차 부담이 되는 것이 선물이다. 특히 투자와 보상을 염두에 두고 계산적으로 하는 선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선물은 무릇 주어서 흐뭇하고 받아도 부담이 없어야 한다. 예전(禮典) 통례편(通禮編)에도 “증답(贈答) 즉 사람에게 물품 등을 증정함에는 정성을 표시하는 데에 그치고, 분수와 도의에 맞도록 할 것이며 예에 맞지 아니한 증물은 받지 말것”이라 적고 있다.
모처럼 확산되고 있는 추석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이 이처럼 인간의 정이 묻어나는 건전한 선물문화로 정착돼 밝은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정준성 ·논설위원
선물(膳物)
입력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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