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슬 산들바람 가을을 보내주자/발 밖의 물과 하늘 청망한 가을일레/앞산에 잎새 지고 매미소리 멀어져/막대 끌고 나와 보니 곳마다 가을일레./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사계시(四季時)중 가을을 노래한 시구(詩句)다. 백로는 24절기의 하나로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때이다.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들며 음력 8월이고, 올해는 양력으로 9월 8일이다. 이 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하며 맑은 날이 연이어지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날씨다.
 
밤기온도 내려가 제법 쌀쌀하기도 하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하게 나타난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 입기일(入氣日)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侯)로 나누어 초후(初侯)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侯)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했다.

백로 전후의 날씨가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때쯤의 날씨에 관심이 많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지만 한낮 초가을의 노염(老炎)은 벼이삭을 영글게 하는데 더없는 보약이고 과일들도 단 맛을 더해간다. 그래서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 쬐는 하루 땡볕에 쌀 12만섬이 증산된다고 한다. 중위도 지방의 농사는 그간 여름 장마에 의해 못자란 벼나 과일들이 늦더위에 알이 충실해지고 과일은 단맛을 더하게 된다. 이 때의 더위로 인해 한가위에는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포도가 제철을 만나 이른바 포도순절(葡萄旬節)인 요즘 지긋지긋한 비때문에 농민들이 시름에 젖어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리고 일조량이 부족해 농사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지우제(止雨祭)?'라도 지내야 할판이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 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 하는데 백로(白露)인 모레는 정말 쨍쨍한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이준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