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9월 8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태풍은 '사라(Sarah)'였다. '사라'란 로마자 문화권의 여자 이름이고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이자 이삭의 어머니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이복(異腹) 누이로 근친결혼도 아닌 남매결혼, 91세에 이삭을 낳고 127세까지 살았다. 91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센 여자였던가. 그리고 '사라'의 뜻은 '여왕'이다. 그래서 태풍 '사라'가 그토록 혹독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라'의 위세조차 뭉개버린 이번 '매미'의 정체는 무엇인가. 마귀나 도깨비, 두억시니(夜叉)도 아닌….
매미라면 고대 그리스인도 높이 평가했고 그 유명한 로크리의 류트(lute) 연주 전설이 말해주듯 오직 사랑 연주, 사랑의 노래밖에 모르는 로맨틱한 곤충이며 행복과 영원한 청춘의 상징이다. 그러나 5개의 눈으로 적을 경계할 뿐 아니라 고대 중국인들은 매미의 탈바꿈을 불멸의 부활 그런 상징으로 여겼다. 또한 향년 17년, 가장 오래 사는 곤충이다. 그래서 태풍 매미가 그토록 지독했던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북한 제(製)'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앤디(앤드류), 세실, 사라 등 태풍 이름은 미 태풍합동경보센터가 정해왔지만 2000년부터는 14개 회원국의 고유 이름을 번갈아 쓰고 있지 않은가. 매미, 도라지, 기러기, 봉선화, 민들레 등이 북한 것이고 개미, 장미, 수달, 노루 등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번 태풍 매미는 '사라'의 최악을 능가한 사상 최악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강인 초속 60m의 광풍이 훑고 간 영·호남과 영동지방의 피해는 너무나 엄청나고 참혹하다. '사라' 때와 똑같은 피해 지역이다. 한없이 무서운 대자연의 재해 앞에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우리 인간의 존재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태풍 방지야 불가능하겠지만 날아가는 지붕과 깨지는 유리창부터 막을 수 있는 내풍(耐風) 건물 설계의 의무화 등 철저한 대비만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오동환(논설위원)
태풍 매미
입력 2003-09-15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9-15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