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1961년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행정부에 월남 파병을 자청한다. 겨우 미국의 허락을 얻어 후방군사원조 지원단인 비둘기부대를 파병한 때가 65년2월의 일이다.

10월에는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 등 전투병력이 월남땅에 상륙하면서 '따이한의 전설'이 시작된다. 이후에도 전투병력인 백마부대와 군수지원 부대인 십자성부대 등이 추가 파병되면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4만8천명의 병력을 상주시킨다. 8년간의 파병기간 중 총 34만여명의 젊은 따이한들이 정글을 누볐고 이중 5천68명은 혼백으로 흩어졌다.
 
당시 월남전 파병은 한국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국책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경제·군사 분야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꽃 같은 청춘들을 포화의 현장으로 보냈다. 참전 장병들의 목숨값은 경부고속도로, 한국중공업으로 바뀌었고 소위 월남특수로 이어져 종국에는 '한강의 기적'에 초석이 됐다.

그래서였나. 전세계가 반전시위로 몸살을 앓던 시절 우리는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따라 부르면서 10억달러 짜리 전쟁특수를 구가했으니 두고두고 부끄러울 노릇이다. 말썽쟁이 총각에서 전쟁영웅으로 변신해 훈장달고 금의환향한 그 때의 金상사 李하사 朴병장 등 6만여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투병 중이니 더욱 그렇다.
 
최근 미국이 우리 정부에 사단규모의 전투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추악한 전쟁으로 판정을 받고 있다. 당사국인 미국 조차도 명분을 세우기 힘든 전쟁터에 우리의 젊은 목숨을 빌려줄 이유가 없다.

일각에서는 파병으로 챙길 국가이익을 거론하는 모양이지만 또다시 후세의 망신거리를 남기느니 포기하는 편이 백번 낫다. 월남전이 종전으로 치닫던 지난 70년 미국 상원 대외안보공약소위원회가 월남 참전 한국군을 '피의 보상을 노린 용병'으로 조롱했던 사실을 상기할 때다./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