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왕후이(王輝) 중국 톈진(天津)사회과학원장의 저서 '中國的 官場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장병(官場病)'이란 '관료병(官僚病)'이다. 그는 관료사회를 한 마디로 '문산회해(文山會海)'라 했다. '서류만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회의만 바다처럼 끝이 없다'는 뜻이다. 뭔가 줄곧 하긴 하지만 상급 공무원인 관(官)이든 하급 공무원인 료(僚)든 한결같이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져 역동하는 현실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료주의의 정의를 미국의 정치학자 라스웰(Lasswell)이 그의 저서 '권력과 사회'에서 내렸다. ①권력을 빙자, 실력 이상으로 과시하기 ②상사에겐 비굴하고 부하에겐 오만불손 ③틀에 박혀 융통성이 없고 인정을 외면하기 등 7개 항이다.

태풍이 영남에 상륙했는데도 제주도에서 골프를 쳤다는 김진표부총리는 제③항 '인정을 외면한' 경우일 것이고 왕후이가 질타한 '관장병'의 표본일 것이다. 골프가 얼마나 좋기에 태풍 속에서도 그리 할 수 있었을까. '관리'란 무엇인가. '官'은 본디 관청과 직책이었지만 조정에서 치르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가고시에 합격한 고급 공무원이다. '吏'는 '아전 리'자로 관료의 '僚'에 해당한다. 영어의 관료 'bureaucracy'도 '뷰로'는 관청의 큰 책상, 크러시는 '…의 지배'란 뜻이다. 관청의 큼지막한 책상 앞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관료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에 '관료적인 번문욕례(繁文縟禮)'라는 뜻도 있다는 점이다.

관료의 병폐란 '관료적인 번문욕례' 즉 '문산회해'에 얽매여 뭔가 줄곧 하는 체만 했지 정작 돌봐야 할 백성의 고충은 외면함이다. 정다산(丁茶山)은 '애초의 세상엔 백성이 있었을 뿐 목민자(牧民者)는 없었고 한 고을이 혼란하면 군수와 현령(縣令)의 책임'이라고 했다. 대피령을 내리지 않아 많은 인명 피해를 부른 시장, 군수 또한 관료병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