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11월4일. 디즈레일리 영국 총리가 유대인 재벌인 로스차일드가(家) 저택에서 주인 라이오넬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을 때 하인이 전보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홍해(紅海)∼지중해의 수에즈운하를 이집트가 팔려고 내놓았다는 극비정보였다. 17만주의 가격은 400만파운드(약 72억원). 두 사람은 묵묵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잠시 뒤 총리가 말했다. “사겠다.” 다음 날 각의의 인준을 받은 그는 빅토리아여왕에게 보고했다. “It is yours, Madam(여왕폐하, 이건 당신 것입니다).” 운하라면 얼핏 연상되는 수에즈운하, 1956년 이집트의 국유화까지 영국의 지배권(81년간)은 이렇게 시작됐다.

대서양∼태평양의 파나마운하도 대국인 미국이 건설, 1914년 준공했다. 그러나 일시금 1천만달러에 연(年) 25만달러의 사용권 체결 대금이 적다는 이유로 파나마는 비준을 거부했다. 그 때 콜롬비아의 일부였던 파나마가 반란을 일으키자 미국은 즉각 군함을 파견, 협조했다. 물론 파나마공화국의 독립을 도와 운하 독점권을 따내기 위함이었다.

동양의 운하라면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건설한 전장 2천400㎞의 대운하부터 꼽힌다. 화중(華中)∼화북(華北)의 대운하라고 해서 이름이 그냥 '대운하'다. 한데 그 운하는 당대의 플레이보이 양제가 금은보석으로 장식한 4층짜리 호화선을 띄우고 절세 미희(美姬)들과 즐긴 유락(遊樂)의 운하로 유명하다.

운하란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때부터 건설됐고 마리카운하, 나르완운하 등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곳도 있다. 수에즈, 파나마 외에도 영국의 브리지워터, 독일의 킬(Kiel), 그리스의 코린트 등이 유명하다. 10여년 전부터 추진, 이 땅의 으뜸 명물이 될 경인운하 건설이 전면 재검토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 양제의 유람선 같은 건 아니더라도 내륙의 수로를 오가는 선박들이라니, 그 얼마나 멋있고 로맨틱하고 그 흔한 말로 환상적일 것인가.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