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 29일 브뤼셀의 헤이셀 스타디움에서는 영국 축구의 최강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유럽 컵 결승전이 벌어질 참이었다. 예상대로 전 유럽의 축구 팬이 몰려들었고 인파는 그라운드의 담장마저 무너뜨릴 정도였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흥분한 관중은 돌팔매질을 하는 등 편싸움을 벌여 40여명이나 죽었다. 하긴 축구장 난동을 넘어 '축구전쟁'이 다 터지지 않았던가. 1969년 남미 온두라스에서 벌어진 홈팀과 엘살바도르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선수끼리 싸움이 붙자 금세 관중석과 장외로 번졌고 급기야는 양국 군대까지 동원되는 등 일대 웃음거리 전쟁을 야기했던 것이다.

작년 3월 24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도 프로축구 홈팀 궈리(國力)와 칭다오(靑島)의 하이뉴(海牛) 경기에서 난동이 벌어졌다. 경기 종료 3분전 홈팀이 3대2로 앞서가던 중 페널티킥으로 동점이 되자 난동이 벌어져 수백명이 다쳤다. '國力'팀의 체면이고 뭐고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선 구기광(球技狂)을 '추미(球迷)'라고 한다. 그들이 흥분하면 훌리건(hooligan), 즉 '불량배' 수준을 넘어 이성을 잃고 얼이 빠지기 때문인가. '추지(球子)'라는 말도 '불량배'다. 그래서 독일 베를린 시는 94년 4월 18일의 독일과 웨일즈(영국 남서부 반도)의 경기를 그 날이 바로 나치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101회 탄생일임을 염려해 경기장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고 4월 20일 본의 독일과 잉글랜드 경기도 히틀러의 105회 탄생일과 겹쳐 잉글랜드 쪽에서 취소해버렸던 것이다.

경기장의 과격 팬 난동은 야구장, 농구장 등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엊그제 롯데와 삼성의 프로야구 경기장을 온통 쓰레기 난장판으로 만든 관중 난동도 예외가 아니다. 말이 좋지 선수가 시종일관 페어플레이 펼치기가 그렇게도 어렵고 관중의 신사적, '숙녀적'인 매너 지키기도 그렇게 난감하다는 것인가./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