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통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턱수염 없는 링컨을 상상할 수 없지만 사실 링컨이 수염을 기른 것은 암살될 때 까지 4년 뿐이었다.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11살 짜리 소녀가 대통령 선거 유세전에 나선 그에게 수척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턱수염을 기르도록 조언하는 편지를 보냈다.
링컨은 소녀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고 결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돼 하나의 미합중국을 건설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빼빼마른 꺽다리 추남 후보의 이미지 변신을 주문한 소녀의 편지가 없었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링컨이 대선에서 실패했다면, 지금 미국은 남북으로 분단됐을 수도 있고 흑인 인권 문제가 심각한 나라로 지탄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그의 체취가 배인 친필 편지를 받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보내기'와 '삭제' 버튼으로 무의미한 메일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고 휴지통에 쏟아버리는 전자우편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한 때 전국의 초·중·고교가 일제히 '국군장병 위문편지'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강탈한 군사정권이 청소년들에게는 표현의 의무를 강제한 꼴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때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막사마다 무더기로 배급된 일종의 관제 편지였건만, 거기에 배인 소년소녀들의 순수한 연민은 전선의 강추위도 잠시 녹여낼만 했던 것이다. 육필 편지의 위력은 '관제'라는 딱지속에서도 살아 숨쉰 것이다.
최근 본보에 과천 청계초등학교 학생 600여명이 태풍 매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에게 전해달라며 600만원의 성금과 600여통의 위문편지를 맡겨왔다. '돈 만으로는 우리 마음을 모두 전달할 수 없었다'는 생각도 기특하지만, 어린이회가 희망자에 한해 편지를 쓰도록 했는데도 전교생이 모두 호응했다니 더욱 갸륵하다. 모쪼록 고사리들의 진심어린 '위문편지'로 수재민들이 삶의 희망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尹寅壽〈논설위원〉
위문편지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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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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