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하던 한정법인 '시민법'이라는 게 있었고 로마 시민권이 없는 외인에게도 적용하던 포괄법인 '만민법(萬民法)'이라는 게 존재했다. 희한한 건 당시의 '명예법'이다. 박사가 아닌 '명예박사'와 같은 개념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로마 공화정 후기에 존재해 고래의 시민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는 효력을 가졌던 법체계가 '명예법'이었고 그 법을 당시엔 명예직이었던 법무관 등이 관장했다.
가장 위대한 법은 삼라만상 자연계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믿는 초인적이고 신비로운 법인 '자연법'이다. 인위적인 법이 아닌 자연율(自然律)이다. 또 하나 위대한 법은 '이성법(理性法)'이다. 시대를 초월해 변함없이 보편타당성과 사유필연성을 띤 법률, 성문(成文)이 없이도 양심과 도리와 이성에 의해 잘도 굴러가고 운용되는 법이 이성법이다. 칸트와 헤겔과 피히테가 존중한 법이 이성법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법, 이성법에 대한 반발법이 곧 성법(成法), 성문법(成文法)이고 문자로 구체적인 율령을 작성해 성문화한 실증법(實證法), 실정법(實定法)이 즉 성법, 성문법인 것이다. 한 마디로 자연법, 이성법의 반대가 성문법, 실정법이고 오늘날의 모든 법이 실정법이다. 그러므로 법이면 법이지 '실정법'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이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최대의 화두(話頭)와 말꼬리가 송모 교수의 '실정법' 위반 처벌 여부와 눈금 높이다. 사장 취임 즉시 고대했다는 듯이 잽싸게 그의 행적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KBS, 그런 골수 '공산화운동꾼'을 초청한 민주화운동 단체, “처벌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법무장관의 언사 등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저촉법이 엄존하는 한 그의 30년간 범법 행위가 파렴치한 거짓말 끝에 쓴 반성문 한 장과 사죄 한 마디로 면죄부와 '면죄사(免罪辭)'가 될 수는 없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감정인 듯싶다./오동환(논설위원)
실정법이 뭡니까
입력 200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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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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