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정치가 혼란하다. 하기야 혼란을 면한 적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왜 정치인들은 죽자 사자 싸움만 하는 것일까. 그 원인은 복잡한 '배신의 사슬'에 있다. DJ를 왕따 시킨 90년 3당합당은 두 야당이 여당으로 변신하는 국민을 배신한 초대형 야합이었지만 보수대연합으로 포장됐다. 결국 YS는 배신의 터전에서 집권을 일군다. DJ도 만만치 않았다. YS에게 한수 배웠는지 혈액형이 다른 JP와 연합해 공동정권을 세웠으니 말이다. JP는 연달아 두번이나 내각제 각서가 휴지조각이 되는 배신의 업보를 맛보아야 했다.
지난 대선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씨는 당을 등진 뒤 민주당 경선도 불복하고 자민련에 의탁중이다. 정몽준씨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대선 전날 취소하는 희극적 배신으로 웃음거리가 됐다. 이렇듯 정치지도자들이 배신을 만연시키다 보니 그들을 따르는 의원들도 이당 저당 유랑하느라 몸이 고달플 밖에…. 이들을 '철새'라 욕하지만 한번 찾은 곳을 바꾸지 않는 신의의 상징인 철새 입장에서는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최근에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을 놓고 배신 공방이 치열한 모양이다. 집권초 무당적 대통령도 사상 초유의 일이지만 '철새 대통령'이 거론되기도 처음이다. 정말 이정도면 막 가자는 것인데 무당적 대화정치가 가능할 지 걱정이다.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할 정치인들이 가장 끔찍한 단어인 '배신자'로 서로를 호칭하고 있으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17선을 기록한 미 의회역사의 전설적 인물 팁 오닐은 생전에 미국 정치제도의 위대성이 '민주당과 공화당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가 “의회에는 미움도 원한도 없다. 다만 이상을 위한 치열한 논쟁만이 있을 뿐”이라며 '의원'으로 불리는 자신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표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배신의 사슬을 끊지 않고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닐 수 없다./윤인수(논설위원)
배신의 정치
입력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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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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