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사-
 매미소리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고 가을이 깊어간다. 우리들에게 가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역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다.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는 유난히 잘 들린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지표의 온도가 떨어져 풀벌레들의 소리도 그만큼 위로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들에서 암컷을 부르며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사랑의 세레나데'는 역시 가을의 상징이다.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는 귀뚜라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로도 지칭된다. 화씨(華氏)온도를 쓰는 나라의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다. 화씨 온도는 1720년대 독일의 파렌하이트라는 사람이 쓰기 시작한 온도 눈금으로 어는 점인 섭씨 0도가 화씨로는 32도다. 중국 사람들이 파렌하이트를 '화륜해'로 불러 화씨가 됐다.
시계도 없고 달력도 구하기 어렵던 옛 시절,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며 세월을 짐작했듯이 기온도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즉, 귀뚜라미가 15초간 몇 번 소리를 내는지 헤아린 뒤 거기에 37을 더하면 화씨 기온이 나온다고 한다. 쌀쌀해질수록 조용해지는 가을 풀벌레들의 속성을 계량화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다. 또 ‘귀뚜라미가 들녘에서 울면 7월, 마당에서 울면 8월, 마루 밑에서 울면 9월, 방에 들어와 울면 10월이다’란 옛말도 있는데 귀뚜라미는 달력 구실도 했던 모양이다. 고려때와 중국 송나라때는 애완용으로 길렀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기도 하다.

'귀뚜리 저 귀뚜리, 가련하다 저 귀뚜리/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절절히 슬픈 소리, 제 혼자 울어예어, 紗窓(사창) 여윈 잠을 살뜰히도 깨우누나/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無人洞房에 내 뜻 알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는 작자미상의 작품도 전해온다. 님은 떠나고 홀로 텅빈 방을 지키는 아낙네와 외로움을 함께 했다는 얘기다. 올 연말부터는 축산법시행규칙이 개정, 시행돼 귀뚜라미도 지렁이, 메뚜기와 함께 가축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보면 우리와 친근한 벌레임에는 틀림없다./李俊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