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나 진시황 같은 폭군은 차라리 낫다. 무능한 왕이야말로 구제불능이다. 철딱서니 없고 행실조차 나쁜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와 함께 프랑스혁명으로 처형당한 루이16세만 해도 그렇다. 국정이야 '나 몰라라'했던 그는 폭군의 기질은 전혀 없는 평범한 호인형(好人型)이었다. 춤도 추지 못했고 화려한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취미라면 작은 작업장에서 몸소 열쇠를 만드는 일과 사흘에 하루는 사냥을 하는 것이었고 1789년 7월13일, 14일 등 사냥이 없는 날의 일기(日記)는 뻥 뚫린 공란(空欄)일 뿐이었다.

셴양(咸陽)의 진시황 아방궁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과 약탈을 서슴지 않은 초(楚) 패왕 항우(項羽), 힘만 세고 우직한 그는 어떤가. 항우를 가리켜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초인(楚人) 항우를 일러 원숭이가 관을 썼을 뿐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군” 하고 탄식했다. 한데 그 말이 항우의 귀에 들어가자 항우는 한생을 붙잡아 끓는 기름가마에 처넣어 죽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얘기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항우의 모신(謀臣)인 범증(范增)이 항우를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 더불어 대사를 도모할 위인이 못되는구나.”

무능하고 형편없는 왕의 추방책이 맹자의 이른바 '방벌(放伐)'이다. 지난 8월21일 DJ도 언급했던 '방벌'이란 악정의 군주를 백성이 쫓아내는 방법이다. 오늘날의 방벌책으로는 탄핵소추라는 법적 장치가 있다. 1992년 9월의 콜로르 브라질 대통령, 2001년 7월의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그렇게 쫓겨났다. 취임 7개월의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은 거론 자체만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지난 9일 창간 10주년을 맞은 어느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는 16.5%라고 했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국민투표를 무릅쓰고서라도 국민의 지지도와 인기가 무섭게 치솟기만을 바랄 뿐이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