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에 첫발을 디딘 영국 이주민들은 불타는듯한 단풍의 화려함에 취했던 모양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국기(Maple Leaf Flag) 한가운데 빨간 단풍잎을 새겨넣었을 정도이니 단풍의 미감(美感)이 얼마나 강렬했나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 뿐 아니다. 개척 초기 이민자들이 첫발을 디딘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단풍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개척시대의 애환까지 서려있어 의미가 더 하다. 설탕이 귀했던 개척민들은 인디언들에게 단풍나무 수액으로 메이플시럽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 당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개척자들에게 단풍은 심신의 피로를 달콤하게 달래준 묘약이었던 것이다.

한창 단풍철이다. 단풍 고운줄이야 눈 달린 사람이면 다 공감하는 바이겠고, 그래서 전국의 풍악(楓嶽)이 단풍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올해도 어김없다. 권금성을 오르는 케이블카 한번 타는데 5시간이나 기다리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것도 한번 올라 본 단풍 장관에 눈과 마음이 한없이 달기 때문이리라. 단풍관광은 또 지역에도 이롭다. 태풍 매미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끔찍한 재난을 당한 영동지역은 단풍 특수가 지역경제 회생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도시인들이 자연과 공감하는 중에 분배의 경제원리가 작동하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셈이다.

고약한 것은 대자연이 연출하는 색채의 향연을 어지럽히는 인간의 타락이다. 전국 고속도로를 메운 관광버스 중 상당수가 내년 총선과 공천경쟁을 겨냥한 선심관광 행렬을 이루고 있다니 그렇다. 전국 규모의 선거가 있을 때 마다 유권자를 명산대처로 실어나르는 관광버스 행렬이 이번이라고 예외일까마는 대통령이 부패한 우리정치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도덕성을 걸고 재신임 국민투표를 결단한 마당이다. 재신임 정국과 고속도로를 누비는 선심관광 행렬이 빚어내는 대조가 단풍 만큼이나 현란하다. 단풍은 결국 낙엽으로 지고 만다. 표를 사겠다는 정상배들의 말로(末路)도 이와 같기를 소망해 본다. /尹寅壽〈논설위원〉